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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s real, Real is love
Love is touch, Touch is love
Love is free, Free is love

'사랑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관객들에게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얼마나 설득력있게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시간 반 남짓되는 상영시간 동안이라도 사랑에 빠진 듯한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면, 그 영화는 '사랑영화'로서 만든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에게 성공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세상에 '사랑'이라는 말처럼 텅 빈 말도 또 없다는 게 사량영화들 앞을 가로막는 난제다. 진실(real), 터치(touch), 자유(free) - 쓰고나니깐 무슨 대학교 모토같구마.. 흠.. - 같은 말들처럼 사랑이라는 말 또한 모든 것을 가리키고, 그럼으로써 아무 것도 가리키지 않는 텅 빈 말이다.

이것은 잘 써먹기만 하면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그 어떤 감정상태에 대해,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석/발견해주는 신선함의 기회가 되어주기도 하고, 여차 삐꾸가 나면 진부함으로 추락할 수 있는 위험도 안고 있다.

그런데 용감하게도 이 말을 제목으로 갖다 붙인 영화가 한 편 나왔으니 그 이름하여 <러브>. 이 용감한 영화는 이 텅 빈 말을 과연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자귀모>의 바통을 이어 여전히 결혼사진적인 포스터의 곱상한 이미지와는 달리, <러브>는 관객들 귀에서 피날 정도로 쏘는 코란도 광고틱한 음악을 배경으로, 코란도 광고틱한 지옥훈련을 하는 마라토너 - 사실 농구 선수나 럭비 선수같애 보이지만두 - 들로 포문을 연다.

여기에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졸라 받고는 있지만 중압감을 느끼며 망가져가고 있는 엘리트 선수(명수, 정우성 분)가 끼어있다. 그는 물론 주인공이다.

그리고 물론, 그와 함께 찐따같은 친구 한 명(경철, 이범수 분)이 별책부록으로 끼워 나온다.

다음, 또 한명의 상처받은 영혼이 등장하는데, 뿌리를 모르는 공허함을 부여안고 사는 미국 입양아(제니, 고소영 분)다. 그녀도 물론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영화의 미국 로케이션의 결정적인 핑계로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그리고 당연히 영화는 이 두 명의 상처받은 영혼들을 <폴링 인 러브 위드>시킨다.

더불어 여기에, 처음에는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 되다가 나중에는 눈치코치없이 끼어드는 방해물이 되고마는, 사람좋고 조금은 금치산자틱한 오빠 한 명(브레드, 박 철 분)이 기본 안주로 차려져 나오는 건 전혀 놀랍지 않다.

자, 얘기가 이쯤되면 <불의 전차>와 <록키>와 <지옥의 링>과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의 짬뽕이 될 것 같은데, 영화는 의외의 방향으로 흐른다.

우선 이 영화는 미국에서 촬영된 영화다. 근데, 명수가 제니, 브레드 남매가 사는 집에 얹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영화의 '틀'은 이들 세 명과 그들의 집안생활에 거의 고정된다.

그러면서 시나리오 작가 송지나씨가 "미국에 40일간 체류하면서 사전자료를 수집해"가면서 만들어 냈다는 인물설정은 거의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대부분의 얘기가 전개되는 배경인 제니, 브레드 남매의 집이 왜 굳이 미국의 집이어야 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우선 정우성이 연기하는 '명수'라는 캐릭터를 보면, 그의 일상은 마라토너로서의 고뇌같은 것은 거의 없이 하염없이 '제니'만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으로 점철된다. 그가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마라토너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은, 난데없이 친구 경철이가 찾아와서 그의 재기를 눈물로 호소할 때, 그리고 마지막 마라톤대회에 나갔을 때 뿐이다( 대회 나가기 전 '제니와 함께 연습을' 부분은 물론 제외다. 그건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의 국제대회 준비훈련이라기 보다는 신혼부부의 체력단련 피크닉 코스로 보이기 때문이다).

고소영이 연기하는 '제니' 역시 그녀의 파트너와 별로 사정이 다르지 않아서, 전반부 내내 뚱- 해 있긴 한데, 그것이 뿌리를 모르는 입양아의 슬픔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중간중간 엄마를 찾아 전화를 하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건 그저 건조한 '설명'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해, 관객과 제니 사이에는 어떤 감정적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는다. 덕분에 그녀 옆에서 절라 안절부절 못하는 '브레드'의 안타까운 연기는 오바하는 호들갑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절망에 부딪친 스타 마라토너와 존재의 뿌리를 모르는 입양아'라는 이 영화의 화려한 인물설정은 거의 쓸따리없는 공수표가 되어버린다. 게다가 이들이 애정행각을 벌이는 미국이라는 공간도, 기댈 사람이라곤 서로밖에 없는 절박한 외로움을 강화시키는 생경한 공간으로 보이지도 않고( <깊고 푸른 밤>의 미국과 비교해 보시길 ).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영화가 미국 로케이션을 감행한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마지막 남은 결론은 '이국적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서'일텐데, 이 또한 답이 되지 못한다. 앞서도 애기했지만, 영화속 공간은 거의 실내에 한정되어 있고, 야외 촬영 장면에서도 '와.. 미국의 풍광은 졸라 색다르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은 없다.

<러브>의 " 태양이 작열하는 아리조나 사막, 끝도없는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산페드로 공원, 세련되고 현대적인 LA도심 한복판 "은 <미술관 옆 동물원>의 남산순환도로 보다 훨씬 무미건조하고 초라해보인다. 그 공간에 대한 이해나 애정없이 그저 관광사진 찍듯 카메라만 들이대니 당연한 결과다.

우리가 매일 지나다니는 공간을 마치 예전엔 없었던 곳처럼 보여주던 <미술관 옆 동물원>을 떠올리면서, 본기자, 내 돈 내고 산것도 아닌 미국행 비행기 표값이 슬슬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Love is feeling, Feeling love
Love is reaching, Reaching love
Love is living, Living love

하지만, 이런 것들은 두 주인공의 사랑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제목에서 선언하고 있듯이 스포츠맨의 고뇌도, 입양아의 아픔도 아닌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게 해주기 위한 '사랑영화'니깐. 걍 '이 영화에서는 모든 잔가지를 쳐내는 단순화 기법을 썼다'구 볼 수도 있을게다.

그럼, <러브>는 두 주인공이 "Feeling love"해가는 과정을 얼마나 설득력있게 그리고 있을까.

<러브>가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흔히 '모티브'라고 불리우는 물건이나 지형지물( 찌라시에 따르면, 이 영화의 모티브는 "길, 가로등, 언덕, 화분, 비" )을 통해서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법과,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그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이다. 모티브와 반복, 우리가 이미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즐겁게 경험했던 기법이다.

근데 같은 기법을 쓰고 있는 <러브>는 아쉽게도 별루 즐겁지 않다. 모티브를 반복해서 쓰겠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지만, 거기에 감정을 이입하는 등장인물들 자체가 설득력없는 상황에선, 그런 기법은 어떤 짜릿함도 주지 못하고 그저 잔재주로 전락하고 만다.

덕분에 영화 앞뒤를 묶는'조수석에서 빌빌 졸다가 제니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명수' 장면, <로미오와 줄리엣>스럽게 집 2층의 명수와 1층의 제니를 번갈아 보여주면서 둘의 관계의 진전을 표현하는 장면, 후반부의 '꾸준한 마라톤 연습속에 싹트는 우리 애정' 장면은, 그 뜻만 가상했던 장면들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본기자, 이 영화의 헤드 카피는 분명 "마지막 가을에 만나는 러브 스토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아실아실한 핫팬츠에 남방하나만 걸친 제니의 희여멀건한 다리를 들여다보는 명수, 마룻바닥을 걸레질하는 제니의 똥꼬를 집요하게 쳐다보는 명수 등의 장면들은 대체 뭔가.

물론 이건 '여자 다리도 똑바로 못 쳐다보는 순진하고 귀여운 명수'을 만들고 싶었던 설정이었겠지만, 이건 결과적으로 <자귀모>의 '색귀'에 필적하는 엽기 농후한 장면이 되고 말았다.

이런 '하체 강조 씬'과 '명수의 위험한 눈길' 덕분에, 명수와 제니가 좁은 복도에서 맞딱뜨리는 장면들은 '순간적으로 표현되는 미묘한 사랑의 감정'보다는 '암컷을 덮치기 3초전의 발정난 숫컷의 위태로움'을 표현한 듯한 장면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뒤의 이야기 전개는 이런 식이다. 제니 엄마 얘기가 나오는가 싶으면, 갑자기 바람같이 등장한 경철이 거품물고 "씹쌔"거리다 홀연히 사라지고, 그러다 갑자기 비가 오고, 사랑은 깊어가고..

한마디로 명수의 은근한(또는 집요한) 시선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된 제니의 감정변화나, 이야기의 전개가 설득력 없다는 얘기다.

비오는 날 심수봉 노래 함 불러주고 막춤 함 추면 사랑이 싹트나? 정말 쉽다. 본기자도 이 방법 꼭 함 써먹어보리라 굳게 다짐한다.

특히 후반부, 제니와 명수의 '관계'가 브레드 앞에서 백일하에 폭로되는 장면은 관객을 민망/난처하게 만드는 장면 1위다. 본기자, 이 대목에서는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줘야 할 지 난감할 따름이었다.

브레드는 제니를 친오빠보다 친오빠같이 사랑하는 박애의 천사 아녔나? 그래서, 본기자, 현장을 덮침당해 당황해 마지않은 제니와 명수가 보여주는 귀여운 코미디에서 안심놓고 웃어주려고 했으나, 갑자기 의붓 여동생을 굴러온 돌에게 빼앗긴 의붓오빠의 분노가 졸라 진지하게 폭발하는 덕분에 심히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어, 쟤 정말 자기 동생을 이성으로서 좋아하고 있었잖아 ? 저 넘이야 말로 '보이지 않는 위험'이었네..?'

난처한 것은 이뿐이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미스 캐스팅의 원단을 보여주고 있다. 쭝앙일보 기사처럼 "미묘한 감정선을 표현하다보니 배우의 개성이 뒤로 숨"게 된 것이 아니다. 캐스팅 자체가 배우의 개성에 대한 철저한 오해에 기반해 있고, 배우들의 연기력이 그걸 커버할 수 있는 내공에 도달해 있지 못하다보니 '어색한 연기'라는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미스 캐스팅은 정우성이다( 본기자, 정우성이라는 배우 나름대로 좋아하니 오해 없으시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의 해리역으로 피어스 브로스넌을 쓴 걸 상상해 보시라. 이 미스 캐스팅은 언뜻언뜻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이고자 하는 애쓴 장면들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하는데, 특히 전화장면에서 정우성의 원맨쇼는 그 자체로는 귀여워도, 공허한 사랑의 감정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림같은 몸매에 조각같은 얼굴의 소유자가 '사랑 앞에서 온갖 재롱을 다 떠는 어눌한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 역을 맡았으니 당연하다.

또한 코메디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본인은 웃길 의사가 전혀 없는데 관객은 열나 웃는'류의 코메디도 도처에 깔려있다.

특히 후반부, "도저히 꽃피울 것 같지 않던 화분의 무궁화가 찬란히 만개하여 제니의 대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긍심을 굳건히 회복시켜주었다" 장면은, 과연 '본의 아니게 코메디'의 백미다.

아, 한떨기 무궁화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고소영은 그렇게 울었나보다.. 아아 씨바 이 감동의 물결..

음악 또한 TV 드라마 PD출신 감독의 영화답게 드라마스런 타이밍으로 끊임없이 삽입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난데없이 잘 가던 차에서 내려 달밤에 경주를 하는 경철과 명수 ] ⇒ [ 이윽고 명수와 경철 쓰러진다 ] ⇒ [ 명수를 바라보며 경철 불우했던 어린시절에 대한 대사를 한다 ]

바로 이 감동의 대사와 동시에 피아노 아르페지오로 시작되는 음악 큐. 아마 <러브>의 음악 사용법은 2020년 쯤에 공연될 '신파극'의 음악 독본이 되지 않을까. 영화사료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드높은 영화라 사료된다.

어쨌든, <러브>는 관객들에게 사랑받기 wanting하고 asking하고 needing 하지만, 정작 관객에게는 거의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하고 계속해서 빚만 지다가 끝나는 짝사랑 영화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텅 빈 말을, 새로울 것 하나없는 이야기를 통해 더 공허한 것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사실 이 공허함을 만들어낸 주범은, <구미호> <비트> 이후 세번째로 공연하는 고소영-정우성 커플, 방송 최고 인기 작가 송지나의 시나리오, <아스팔트 사나이> <곰탕> PD출신 이장수 감독 정도의 '스타'들을 그러모으고 여기에 미국 로케이션이라는 양념을 쳐 놓으면 되겠지.. 라는 듯한 시대착오적이고도 안이한 '안전빵 기획'이다.

이 영화에서는 사랑의 방법이나 의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해보려는 참신한 시도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러브>는, <자귀모>같은 발군의 기량을 무지막지하게 발휘하지는 않지만, <자귀모>가 한국영화판에 냅다 뿌려놓은 찬물의 썰렁함을 나름대로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카라>도 만만치 않다)

겉보기에만 화려한 라인업과 포장술로 관객들을 끌어모아놓고, 실망만을 안기는 그런 영화를 100만명 씩이나 봐주는 실수는 <자귀모> 한 번으로 족하다.

문제는 이들 영화들이, 일부 평론가들이 발꼬락 때에 기생하는 찐드기 똥 보듯하는 '멜로영화'이기 때문은 아니다. 어설픈 <쟝르론>으로 개별 영화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건 목욕물을 버리려다 애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에 다름이 아니다.

CG로 도배를 했건, 스타로 도배를 했건 어쨌건간에 자기가 하고자하는 얘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는 자기가 뭔소리를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것이 <러브>나 <카라>의 문제다.

이렇게 본다면 이 영화들과 <미술관 옆 동물원>같은 영화들을 '멜로'라고 싸잡아놓고 얘기한다는 것은 결코 정당하지 못하다. 이번에는 제발 그런 얼치기 장르비판은 나오지 않길 바란다.

그런 뜬구름 잡는 얘기할 시간에 그 '멜로'에 해당된다는 영화 한편한편을 디비보는 쪽이 훨씬 더 영양가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