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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13 일요일

제목

우선 제목 얘기로 시작하겠다.

"쓰리 킹즈"

이 제목이 Three Kings를 소리나는대로 적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본 기자는 알아내고 말았다. 이건 번역, 그것도 의역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쓰리 킹즈.

쓰리의 왕들.

<쓰리 킹즈>란 제목은 '세명의 왕들'이라는 뜻으로 쓰인게 아니라, 바로 이러한 뜻으로 쓰인 것이다.

"왜 '쓰리의 왕들'이냐. 영문제목도 Three Kings고, 포스터도 군바리 세명이 후까시 잡는 사진인데"라고 반문하시는 독자들이 있을 줄 안다. 하지만 본 기자는 한국 영화수입업계의 제목 번역능력에 있어서의 독창성을 이전부터 감지하고 있었던 바, 이는 원 제목을 거의 훼손하지 않으면서 영화의 내용에 충실한 번역을 하고자하는 그들의 부단한 노력의 결실이었다는 걸 이미 눈치깠다. 아래는 그 근거들이다.

첫번째, 이 영화는 쓰리(즉 소매치기)를 하러가는 군바리들에 대한 얘기다. 근데, 뭘 쓰리하러 가는거냐. 바로 걸프전때 이라크가 쿠웨이트한테 삥뜯어서 꿍쳐놨던 금을 쓰리하러가는 것이다.

두번째,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군바리들은 세 명이 아닌 네 명이다. 어느날 갑자기 이라크 포로의 똥꼬 깊쑤키 감춰져있던 보물지도를 입수한 세 명의 쫄따구들과 소령 한 명. 이렇게 네 명이, 전쟁이 끝나가는 어수선한 틈을 타서 지덜끼리 몰래 금 빼앗아와서 공평하게 나눠먹자는 작당을 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이 영화의 한국개봉 제목은 "쓰리 킹즈", 즉 '쓰리의 제왕들'이라는 제목이 붙게 된 것이다. 허나, 이 "쓰리"라는 전문용어는 유감스럽게도 일본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바, 톡 까놓고 '이 영화는 군바리 쓰리꾼들에 대한 얘기다'라고 얘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안다, 니덜 심정. 하지만 아무리 은폐해도 본 기자같이 알 넘들은 다 안다. 아님 말구.

어쨌든, 이 영화는 보통 우리가 전쟁영화라고 하면 연상하는 영화들과는 좀 다르다. 그렇다고 걸프전을 배경으로하는 <인디아나 존스>류의 어드벤쳐는 더더욱 아니고.

필름

영화는, 선댄스 영화제 출신의 젊은 감독(데이빗 O. 러셀)이 만든 영화답게 화려한 스타일들로 점철된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미국 군바리 한 넘이 장난처럼 이라크군을 죽이는 영화의 인트로는 핸드헬드 촬영, 짚 팬, 실감나는 현장녹음 사운드로 다큐멘터리스러운 느낌을 살리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이 언론 저 언론에 회자된 것처럼 이 장면은 '은막 표백 안하구 넘어가기(bleach bypass)'로, 고감도 필름을 사용한 것 같은 거칠거칠한 질감의 탈색된 화면을 만들어낸다. 즉 어떻게든 좀 더 다큐적인 느낌을 만들어보려구 노력했다는 얘기다. (주1)

이런 식..

그 뒤에, 잔뜩 멋을 부린 카메라 워크와 펑키한 힙합 그루브로 종전을 자축하는 미군들의 파티가 보여지면, 이 영화가 대충 어떤 영화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스친다. '전쟁 같은 거 전혀 심각할 것 없는 미국 군바리들 액숀 어드벤쳐 영화구나..' 화면이 멈추고, 타이프 소리와 함께 자막이 박히면서 등장인물들이 소개될 때, 그 느낌은 거의 확신이 돼버린다.

하지만 쓰리의 제왕들이 똥꼬 속 지도를 입수하여, 찰거머리같은 CNN 종군 여기자를 따돌리고, 금괴가 숨겨져있는 벙커가 있는 이라크의 시골마을로 험비Humvee를 몰고 갈 때쯤이면, 영화는 그 흥청거리는 장난기를 슬슬 털어버리기 시작한다. 풋볼 공 모양의 수류탄 갖구 사격연습하는 지럴들은 역시 좀 미친 넘들스럽지만두.

실탄 사격 함 해보구 싶어서 환장한 넘들

어쨌든, 결국 마을에 도착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것은 이 영화가 준비해둔 두번째 스타일이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엑타크롬Ektachrome이라는 사진기용 필름을 써서 보라색 톤이 강하면서 인쇄가 약간씩 어긋나있는 싸구려 올칼라 잡지같은 느낌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주2)

그리고 이들이 드디어 금을 찾아내고, 의외의 상황을 맞딱뜨리면서 이라크 민간인들과 함께 움직이게 되는 세번째 상황에서, 영화는 정상적으로, 조금 더 따뜻해진 색조로 돌아온다.

그 성공여부는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쓰리의 제왕들이 처해진 상황에 따라 거기에 맞는 느낌의 그림을 만들려고 필름선택에까지 똥꼬털 빠지는 고뇌를 했다는 점은 역시 높이 살만하다. 역시 우리가 헐리우드 영화에서 배울 점은 떼돈들인 CG, 폭파장면, 총질장면 만드는 법, 미니어쳐 제작법 뿐만은 아닌거다.

액션

마지막 벙커 습격작전 촬영을 위한 촬영 계획도

또 하나, 액션영화와 전쟁영화와 코메디영화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총격전, 화학전(?), 헬기의 습격등의 전투씬들을 다루는 솜씨 또한 훌륭하다.

이 역시, 단순히 돈 많은 헐리우드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만은 아니다. 자세히 뜯어보면, 이 영화의 전투 장면들에서의 박진감은 치밀하고 세세한 구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걸 알 수 있다. 적어도 이 영화는 총격씬이라고 무조건 핸드헬드 카메라를 눈에서 쥐나도록 흔들어대는 촌스런 짓은 하지 않는다.

특히, 쓰리 킹즈의 대장 아치 게이츠 소령(조지 클루니 분)가 이라크 군 대장과 이라크 민간인들을 사이에 두고 미묘하게 심리적 대치를 하는, 우물가 광장 시퀀스를 보라. 땀 한 방울 떨어지면 당장에라도 총알이 날아올 것만 같은 이런 긴장감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돈으로만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또한, 본 기자야 군사전문기자는 아니니 잘 모르겠지만두, 언뜻 보기에도 꽤나 고증이 잘 돼 있는 듯하다. 특히 험비가 폭발하면서 거기에 실려있던 M60이 차창으로 날아와 꽂히는 장면에서의 아찔함을 보라. 물론 영화적으로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좀 황당한 설정을 한 것도 약간씩 눈에 띄지만, 이런거야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다. 영화의 임무가 현실을 오점 하나없이 그대로 복사해대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영화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 초반부의 야단스럽고, 별로 참신하지도 않은 장난들은 절제했어야 했다고 사료된다. 사실, 가장 성공한 스타일이란 관객들이 감독의 의도같은건 느끼지도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감독의도가 관철되어가는 스타일이 아니던가. 관객의 감정의 흐름을 지레 앞질러가는 스타일은 그 테크닉적 난이도와는 상관없이, 한마디로 뽕인거다.

이건 비단 스타일의 문제일뿐만은 아닐꺼다.

이야기

18개월, 즉 1년 반 동안 걸프전을 연구했다는 감독의 영화이니만큼, 이 영화는 <커리지 언더 파이어>류처럼 철저한 미국인의 관점에서 걸프전 영웅 만들기 같은건 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영화는 CNN의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던 전쟁의 이면에 초점을 맞춘다.

범퍼에 성조기를 든 바트 심슨 인형이 달려있는 험비를 타고, 비치 보이스의 "I Get Around"를 들으며, 금괴가 기다리고 있는 이라크 마을로 떠나는 주인공들을 보라. 얘덜에게 전쟁터는 비키니입은 쭉빵워먼덜이 천지에 널부러져있는 마이애미 해변과 별로 다를게 없었다.

하지만 돈을 보고 들어가서 우리의 주인공이 보게 되고, 선택하게 되는 것은, '악마의 나라'도 '금괴'도 아닌 '인간'이라는 존재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서 자기네덜의 나라가 저지른 과오들이다.

그곳에서 주인공들은 이라크 내 소수민족에게 후세인에게 저항할 것을 부추기고 나서, 무책임한 발을 빼 버린 미국에 의해 간접적으로 학살되는 민간인들을 만난다. 스마트탄이 아닌 기계식 폭탄에 의한 무차별 폭격으로 아내와 딸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이라크 군인을 만난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주인공들의 업보가 된다.

'코메디'라는 목적을 위해, 그리고 주인공들의 '적'을 만들기 위해 이라크인들을 바보 취급하는 몇몇 장면은 역시 재수없지만, 이 영화는 미국산 상업영화가 발언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최대한 걸프전을 깁쑤키 디벼보려 노력하고 있단 얘기다.

하지만, 아무래도 너무 많은 얘기를 하려고 했던 욕심은 문제가 있다. 이건 아마도 위에서 얘기한 '스타일'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일텐데, 한 영화에서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다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재능있는 젊은 감독들이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다.

이 영화는 '1. 돈', '2. 민간인 구출', 그리고 '3. 민간인들의 망명'이라는 세개의 커다란 분기점으로 나눠져 있다고 생각되는데, 1번과 3번 사이의 허리가 지나치게 뚱뚱하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찰거머리 여기자(노라 던 분)가 원유에 절은 해변을 보고 <아리조나 유괴사건>의 홀리 헌터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라던가, 게이츠 상사가 이라크 반군들 앞에서 연설을 해대는 장면, 마지막 부분에 이라크 군을 속이는 설정 등의 꼭 필요하지 않았던 장면들은 과감하게 쳐냈어야 하지 않았을까.

결국 영화는 지나치게 많은 얘기를 하고, 많은 것들을 보여주다가 약속시간에 늦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 결말은 지금까지의 그 많은 사연과 우여곡절에 걸맞을 만큼 마음을 흔들지는 못한다. 이야기를 집중력있게 한 방향으로 끌고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결론 자체가 진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극장문을 나서면서 느껴지는 '뭔가 12% 정도 부족한 느낌'은 바로 여기에서 온 것일게다.

배우

하지만, 이 영화, 꽤 매력있는 영화다. 전쟁과 인간에 대한 경쾌하면서도 나름대로 뼈있는 발언도 그렇고, 고증이 잘 되어 있는 실감나는 전투 액션도 그렇고, 얽히고 섥히는 상황을 치밀하게 끌어나가는 시나리오도 그렇고, 참신한 영화적 시도과 감정을 다루는 노련한 장면 구성도 그렇고 말이다.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등장인물들의 훌륭한 연기가 아닌가한다. 조지 클루니는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보여줬던 예의 그 냉소적이고도 노련한 터프가이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잘 소화해냈다. 아마 조지 클루니 때문이었을까, 어떻게보면 이 영화는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걸프전 버전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그의 존재감은 크다.

조지 클루니가 좀 느끼한 필로 이 영화를 기존의 액션영화와 비슷하게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했다면, 그 반대의 담백하고 소박한, 그리고 약간은 진지한 필을 담당한 배우는 다름아닌 마크 월버그(트로이 중사 역)다. 이 넘, <부기 나이트>에서 덕 디글러 역을 맡아서 덕!하고 38센티짜리 메머드급 조슬 선보였던 그 넘이다(물론 만들어 붙인 가짜였지만, 우리나라 극장판에서는 결국 38센티짜리 시뻘건 화투장으로 대체되었었다). 그 때 그가 보여줬던 귀엽고도 폭넓은 연기에서 좀 더 발전된 버전이 준비돼있다.

래퍼 아이스 큐브(칩 하사 역)도 나오는데, 에디 머피마냥 절라 수다스럽게 시종 랩 같은 대사를 읊을줄 알았던 그는, 의외로 별로 많은 대사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름대로 관객에게 듬직함을 느끼게하는 무게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얘네덜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난민들을 이끄는 이라크의 인텔리 '아미르 압둘라' 역을 맡은 클리프 커티스다. 영어와 아랍어를 넘나들면서 미국 군바리들에게 지지않는 지략과 협상을 해내는 압둘라 역할을 무척 카리스마있게 해냈다. 그가 지하 방공호에서 주인공들을 앞에 두고 한마디 하는 장면을 보라. 연설 내용이야 어땠던, 지금까지 거의 불쌍한 인질 이상은 아니었던 그가, 이렇게 순식간에 좌중의 주도권을 휘어잡는거, 이거 연기해 내는거 꽤 훌륭하지 않나.

결론

허나, 배우덜 연기야 우쨌든, 이 영화는 한큐에 손이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영화임에 틀림없다. 114분, 두 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 전쟁영화라는 컨셉, 한 겨울에 보는 중동의(사실은 멕시코와 아리조나에서 촬영) 사막.. 게다가 걸프전이라는 소재는 더더군다나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 영화, 전쟁영화치고는 무척 밝고, 코메디 영화치고는 무척 뼈있는 비판을 담고 있고, 젊은 감독이 만든 영화치고는 무척 짜임새있고, 많은 물량이 투입된 영화치고는 참신한 시도들도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본 기자는 전쟁이라는, 게다가 아직도 화약냄새 채 가시지 않은 걸프전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설교조에 빠지지 않고 이 정도로 재미있게 얘기를 풀어나가는 재능에 놀랐다. 개인적으로는 그 경악스러운 테크닉으로 전쟁의 끔찍함을 체험하게 하는 것 같다가, 결국은 엄하게도 미국정신을 설파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는, <쓰리 킹즈>의 '적성국가 민간인 구하기'가 훨씬 가치있게 다가왔다.

이 넘들, 군바리를 가장한 날라리 쓰리꾼들이었지만, 적어도 <아마게똥>류의 유치찬란한 '미국만세!'를 울부짖는 코메디 같은건 안하지 않았는가.
　

- 딴지 말초 영화부 부장대우 한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