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2004 4. 9

 

 

아, 정말 오랜만에 쓰는 영화얘기로다..

요 며칠까지만해도 꽁짜로 보는 정치토론 TV프로가 7000원 내고 보는 영화보다도 훨 재밌었던 시국이었으니, 극장 갈 일이 별루 없었더랬다. 게다가 요즘은 또 때가 때인만큼 봐도그만 안봐도그만한 영화들이 미어져 나오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워낙에 상황이 그러다보니, 상당히 진지하다면 진지하다 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나름대로 각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근데, 크라이스트의 패션은 별루 안걸친 패션인데 뭐 별 할 얘기가 있겠냐구? 이런 화창한 춘삼월에 그런 고전의 향취 물씬 풍겨나는 구린 쪼크는 부디 삼가해주시기 바라며, 또한 조심하기도 해주시기 바란다. 종교 가지구 그런 되도 않는 쪼크하다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돌 맞는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당 영화를 둘러싸고 간만에 찬반논쟁 뭐 이런게 촉발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거저거 잡소리 구질구질 늘어놓을 거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당 영화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읊어보도록 하겠다.

필자가 보기에 당 영화는..

1. 일단, 액션영화였다.

게다가 그냥 액션영화도 아니고, 각종 진부찬연한 오바 테크닉이 난무하는 2류 액션영화였다.

첫 부분에 등장하는 숲 장면에서의 시퍼런 상방 조명, 거기에 눈썹을 홀라당 밀어버림으써 악마보다는 화성인스러운 풍채를 과시하던 악마, 그 악마의 콧구녕에서 삐어져 나오는 CG로 만든 뱀 꼬리 등등 각종 헐리우드 2류 액션무비스러운 설정이 도처에 등장한다.

특히, 은전 꾸러미를 굳이 집어 던지는 유대교 제사장의 동작과 그걸 받아내는 유다의 동작은, 거의 <매트릭스>의 초고속 촬영을 방불케하는 유려한 슬로우 비디오로 보여짐으로써 일순 당 영화가 종교 영화가 아닌 스포츠 영화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더랬다.

뭐, 물론 이것은, 예수를 팔아먹는 바로 그 순간이 엄청 중요한 대목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해다는 건 익히 알겠으나, 꼭 그렇게 간발의 차이로 홈베이스에 헤드 슬라이딩하는 최후의 역전주자 보여주듯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그렇게 촌시런 오바 안해도 그거 중요한 대목이란 거 다 안다.

2. 액션영화 중에서도, 호러액션영화였다.

하긴 뭐, 요즘같이 각종 삐까뻔쩍 카메라 워크며 CG며 스턴트가 난무하는 때에 성서 얘기를 좀 액션스러운 감각으로 다루는 것 자체가 나쁠 것은 없을게다. 워낙에 멜 깁슨이 놀던 물도 물이니만큼, 어쩌면 그 정도 한 것만도 양반이라 할 수 있겠다. 좀 진부하고 촌시럽긴 했지만 말이지.

하지만 당 영화를, 단순히 2류 액션영화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종교영화라고 얘기해버리는 건 곤란하다.

왜냐.

다들 아시다시피, 당 영화의 핵심은 '액션'스러움이나 '종교'스러움에 있다기 보다는, 그 호러스러움에 있기 때문이다.

잠깐, 여기에서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필자가 지금까지 누차 얘기해온 거다만, '호러영화'는 '공포영화'와는 완전 다른 영화라는 점이다.

공포영화가 관객을 무섭게/겁나게/쫄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호러영화는 인체에 유해한 각종 칼질/톱질/갈고리질 등을 감행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어우 아프겠다...'라는 단말마의 신음소리를 유발시키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는 영화인 것이다. 따라서, 소위 '슬래셔 무비'니 '스플래터 무비'니 하는 피튀는 정육점 무비들을 '공포영화'라 칭하는 것은, 문희준을 락커라 칭하는 행위에 필적하는 것이라 하겠다.

여튼,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야말로 진정 '호러무비'라 불리워야 마땅하다.

당 영화는 <13일의 금요일>, <스크림>, <나는 네가..> 등등등 웬만한 정육점 무비들은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어우우..' 효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신의 살을 뜯어내듯 난자하는 매질부터 시작해서, 대못같은 대왕급 가시가 박힌 면류관을 쓴 머리를 그 무거운 십자가가 덮친다던지, 손바닥과 발목에 쇠파이프만한 못을 박고, 뒤집어서 관통된 부분을 구부리는 등등등, 당 영화가 이래도 스트레스 안 받을꺼냐는 듯 주구장창 보여주는 장면들은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호러영화로 하여금 일제히 꼬리를 내리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 잔혹 시리즈의 포문을 열어제끼는, 살점 뜯어내는 독수리 발톱형 체벌 도구가 등장하는 부분에선 당 영화의 목표가 신문 1면의 헤드라인과도 같이 명확히 드러난다.

그냥 도구 들고 와서 곧장 몸을 내리쳐도 될 것을, 굳이 멀쩡한 책상을 내리쳐서 나무를 패이게 하는 시범을 일단 보인 다음에야 본격적인 체형을 시작하는 이 장면...

이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이걸로 맞으면 완전 허벌나게 아프다'라는 얘기를 확실히 해두고 싶었던 거다.

다른 말로 하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저걸로 몇십대를 맞으면 그게 얼마나 아플지를 확실히 상상하게 한 뒤, 본격적인 스테이지로 들어간다는 얘기다. 과연 대단하다..

웬만치 상당하다는 정육점 무비들에서도 이런 확인사살까지는 안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3. 호러액션영화 중에서도, 교육용 시뮬레이션 호러액션 영화였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호러의 궁극을 달리는 것인가.

멜 깁슨이 평소 워낙에 승질이 드러워서인가. 그런거 아니라는 건 다들 아실꺼고..

그 이유 또한 간단하다.

그건 관객으로 하여금 예수의 수난을 가장 실감나게 간접체험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는 거다.

그리고, 다름아닌 바로 이것이, 당 영화가 모든 대사를 그 당시의 언어로 그대로 재현해놓았던 진짜 이유였던 것이다.

최대한의 실감효과.

그리고 그를 통한 시뮬레이터적 교육효과.

영화는 여기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4. 그래서 결국 이 영화는..

�F덩어리적 2류 헐리우드 호러 액션 영화에 지나지 않았다.

왜 �F덩어리냐.

물론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 즉, 진부하고도 난데없고도 촌시런 기교들, 그리고 관객들이 탈진할때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맹목적인 잔혹장면들 같은 것들도 당 영화의 �F性에 큰 기여를 하는 요인이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특히, 설마설마 했는데 끝내 막판에 나와주고야 만 예수 부활 장면에서, 이건 정말이지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듯 화면 가득 지나가는 손바닥의 구멍은 그 아동적 유치찬연함의 절정이었음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 것들보다도 더욱 �F스러운 것은, 당 영화가 하고자 하는 얘기 그 자체이다.

필자는 기독교에 대해서 잘 모른다. 물론 '신자'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알 수 있다.

예수의 수난이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음을.

그리고 그 육체적 고통을 감내한 것만으로 예수의 희생이 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하지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그 모든 것을 '몸'에 관한 것으로 간단히 돌려놓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영화는, 그 집요한 '몸'의 수난과정을 통해, 이 영화는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을 뚜렷이 나눠준다. 마치 헐리우드 2류 액션영화처럼.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지금까지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 아래서 행해진, 그러나 진정한 '십자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그 수많은 독단과 폭력을 가능케 했던 아집의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것이 이 영화가 성서의 내용을 그대로 다루고 있음에도, 종교와는 무관한, 또 하나의 헐리우드 호러액션 영화가 되어버린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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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만 꽂는다고 나라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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