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2. 27

상이 좋긴 좋은가보다.

김기덕 감독 영화의 시사회에,

다름아닌 김기덕 감독의 영화의 시사회에

자리가 없어서 복도 계단에까지 사람들이 들어찼다는 거. 바로 이거야말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수상보다도 훨 뉴스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불과 1년전.

평소 김기덕 감독의 영화 별루 안좋아했던 필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재밌게 봤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시사회장에서는, 마치 짜고치는 고스돕인 듯, 영화의 그 절간적 분위기에 완전 어울리는 고적한 분위기가 재현되고 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런데 1년도 채 안돼서, 사막 한가운데에 솟아오른 라스베가스 마냥, 이런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 원인은, 당연히도 상이다.

사정이 이러한지라 시사회장에 온 감독도 "상에 구애받지 말고 느끼신 그대로 적어달라", "상 때문에 과대평가 돼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평가절하 하지도 말아달라" 등등 상에 초월해서 영화를 봐달라는 주문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었다.

헌데 필자는 오히려 그 발언 덕분에 당 영화 관람 내내 상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애초엔 그럴 생각이 없었더라도, 그런거 하지 말아달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런거 점점 더 하고싶어 지더라...하는 것이, 필자같은 안초월적인 인간의 본연의 자세가 아니던가. 여튼,

<사마리아>는, <봄 여름...>과는 사뭇 다른, 하지만 평소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과는 사뭇 비슷한 그런 영화였다.

예의 그 '상당히 논쟁적이려고 하는, 하지만 그닥 논쟁하고 안해도 될꺼 같은' 소재의 선택도 그렇고,

씨발!이라고 부르짖어 마지않는듯한 특유의 터프한 줄거리나 주제의식도 그렇고,

그 줄거리 만큼이나 터프하게 저예산필 물씬물씬 풍겨나오는 화면도 그렇고,

필자가 평소 김기덕 영화의 가장 시껍한 부분 1위로 꼽아마지 않는 국어책적 대사도 그렇고 (ex> "내가 더럽지? 너 내가 더럽구나?" "미안해 내가 너의 마음을 또 상하게 했구나."),

상당히 바람직한 비주얼의 뽀송뽀송한 신인 여배우를 기용하는 것도 그렇고,

그 여배우를 훌러당 해놓은, 고교급 남성 청소년들의 콜렉션 표적 0순위로 랭크되기에 충분한 포스터 역시 그랬다.

좀 곁다리 치는 얘기다만, 오늘 신문에 난 평을 보니 당 영화의 포스터가 얌전해졌다고 한거 같던데, 시방 이게 뭔소린고. 자세히 보시라. 그 청소년급 여성배우, 골룸마냥 상반신에 살색 내복입고 사진 찍은거 아니다.

내복 안 입었다..

여튼,

한마디로 말해서 당 영화는 이전의 김기덕 감독의 영화의 기본 필에서 대박으로 크게 벗어난 영화는 아니니, 평소 감독의 영화를 싫어했거나 재미없어 했거나 둘다였거나 하는 관객은 관람 여부를 신중히 고려하는게 좋으리라 사료된다.

물론, 저 청소년급 여배우들이 얼마나 훌러덩 해주까나...뭐 이런 부푼 기대를 가슴속 깊숙한 저곳에 남몰래 간직하며 구강으로부터 타액을 수시로 범람시키시는 관객 역시 관람을 포기하시는게 좋겠고. 그런거 안 나오니깐.

뭐, 그래도 난 어떤 영화길래 상을 탔을까 궁금한 건 참을 수 없다고 하면 그냥 보시면 되겠다. 영화는 '바수밀다', '사마리아', '소나타'라는 뭔소린지 잘 알아먹기 힘든 제목의 세 챕터로 나눠져 있는데, 각 챕터의 뜻은 영화를 보시면 다 아시게 돼 있으니 굳이 설명하지 않으련다.

단, 그 세 챕터 중 가장 멋졌다 사료되는 챕터는 역시나 마지막 챕터 '소나타'였는데, 그 마지막 향해가면서 점점 밀려오던 그 묵직한 그 느낌은, 감동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그런 것이었다는 건 짚고 꼭 넘어가야겠다.

덧붙여, 그 '소나타' 챕터의 제목이, 설마설마했는데, 현대자동차 소나타 투 할때의 그 소나타와 엄청 밀접하게 연관이 있었더랬다는 사실은, 필자 개인적으로는 거의 충격에 가까왔던,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이었다는 것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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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필자가 이 영화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다. 그건 위에서 읊조렸던 것처럼 상에 대한 얘기다.

우리가 이 영화에 대해서 얘기할 때, 하나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영화가 받은 상이 작품상이 아니라 감독상이라는 점이다.

상이면 다 장땡이지 뭐 그딴 타이틀을 중요하게 생각하냐고 따지신다면, 이렇게 말씀드리련다. 이건 타이틀의 문제가 아니고 종류의 문제라고 말이다.

이거이 뭔 얘기냐.

일단 영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큰돈이 들어가는 장르인데다가, 쫌만 영화같은 영화를 만들려구 맘만 먹더라도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 하는 돈이 있고, 그 돈 끌어모으다보면 각종 이해관계가 얼키고 설키기 시작하는, 상당히 골치아픈 장르인 것이다.

이런 판에서, 자기 하고 싶은 얘기 다하면서도 멀쩡한 개봉관에 걸리는 영화를 만들기란 생각만큼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특히, 남들과 다른 뭔가를 하면 상당히 살아남기가 힘들어지는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팍팍한 상황에서 김기덕 감독이 보여준 작전은 상당히 멋지다 사료된다.

그 작전이란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사실, 제 아무리 고매찬연한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안 봐주면 다 말짱 황이 아니던가. 또, 그나마 그런 얘기라도 하기 위해서는, 떼부잣집 후손이 취미로 운동삼아 영화 한 편 만들어보는 것도 아닌데, 어쨌든 어디선가 제작비는 끌어모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투자자들 수지는 맞춰줘야 할 것이고, 또 그러려면 어쨌든 관객들이 들만할 화제성은 있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최대한 사람들이 들만한 요소를 집어넣어, 영화제작에 착수할 수 있는 최소한의 투자비를 끌어내고, 그 영화를 최대한 저렴하게 만들어 투자비 회수에 대한 위험을 줄이는 것. 이것이 김기덕 감독이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수립한 작전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김기덕 영화에 대해서 주구장창 '논쟁적'이니 '선정적'이니 '파격적'이니 하는 단어를 붙이는 재래식 언론의 읊조림은, 사실 이러한 작전에 본의 아니게 말린 결과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김기덕 감독이 이런 것들을 모두 치밀하게 계산에 넣어서 움직이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고, 별루 알 필요도 없겠다. 중요한 건, 매번 저런 방식으로, 그것도 10편이나 되는 영화를 만들어댄 감독이 실제 우리나라에 있다는 사실(fact)이니까 말이다.

만일 베를린 영화제가, 지들끼리 지들 맘대로 영문을 알 수 없는 지들끼리의 부분에 필 꽂혀서 상을 준 것이 아닌, 이런 부분에 주목을 하고 다름아닌 '감독'상을 준거라면, 이번에는 상당히 제대로 된 상을 줬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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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필자는, <사마리아>를 포함해서 <봄 여름...> 외의 김기덕 영화에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지루하게 느낄 정도다.

특히 그가 예전이 영화들을 통해 쏟아내고자 했다던 분노나 그걸 통해 부르짖고 싶었다던 주장은,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새롭지도 못한 얘기라고 본다.

게다가 그의 영화가, 단지 돈과 시간이 없다는 것만으로는 정당화시킬수는 없는 허술하고 거친 부분도 상당히 많이 함유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각종 오해와 무시와 욕을 댓가로 치르면서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확실한 나와바리를 만들어 낸 점, 그리고 그렇게 만든 영화에 어쨌든 줄기차게 자기 목소리를 집어넣고 있다는 그 사실은, 그의 영화들보다도 훨씬 감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는 살아남지 않았는가.

<실미도>, <태극기..>의 여파를 몰아 <사마리아>도 열심히 몰려가서 봐줌으로써 대한민국 중장년층의 문화적 저력을 과시하자!!라며 오색종이 뿌려대는 필로 기염을 토해내는 글이, 딴곳도 아닌 멀쩡한 일간지 지면에 멀쩡한 칼럼으로 실리는 바로 이 곳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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