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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2.3

< 미스틱 리버 > 적정 관람료 (7000원 기준)

[ 인상요인 ]

주연배우들의 궁극의 연기 : +3000원
요즘 영화판에선 보기 드문 절제미와 공력 : +1000원
영화 관람 뒤 오히려 더 짙게 남는 감흥 : +500원

계 +4500원

[ 인하요인 ]

졸림 : -4000원
어두움과 슬픔 : -2000원

계 -6000원

적정 관람료 : 7000원 + 4500원 -6000원 = 5500원

물론 처음부터 승부는 결정되어 있었다.

복수를 테마로 삼았다는 점 외에도, ‘쪅쪅쪅 피칠갑’을 전술적 거점으로 삼고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점, 그리고 평소 이미지에서 벗어난 재밌는 스타일로 변모된 大王급 배우를 간판으로 내밀었다는 점에서도 두 영화는 상당히 유사하였다.

더불어, 두 영화 모두 멋진 스타일을 강조는데 상당히 용을 썼다는 점 또한 또 하나의 공통점이었고.

그렇다하더라도, 승부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우마 서먼이 제 아무리 이소룡 형님形 노랑 추리닝을 입은 채 시퍼런 니뽄刀 만큼이나 시퍼런 도끼눈을 떠줘도, 이미 그거 하나만으로도 관객 50만은 거저 먹고 들어간 최민식 형님의 안테나형 머리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제 아무리 쿠엔틴 타란티노가 과감히 일제 애니메이션까지 도입하며 화려무쌍한 스타일을 극한까지 밀어붙임으로써, 나중에는 칼 맞고 떨어져나간 사지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피마저도 웃겨보이게 만든 오바의 미학의 궁극을 실현하였다 하더라도, 다름 아닌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을 극복할 수는, 절대 없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선.

게다가, 간만에 평양 교예단을 능가하는 조직력을 과시해 준 국내 재래식 언론들과 평론가들의 장엄한 만쉐이 삼창은, <늙은보이>를 영화사에 찬연히 빛날 불멸의 걸작으로 거듭나도록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 한 번, 우리나라에선.

하지만, 그 볼륨 이백만의 찬사도 제대로 못 알아먹는 귀꾸녕 조또 막힌 필자는, 아직도 이러한 의문을 떨치지 못한다.

과연 <늙은보이>가 모든 이가 쌍수들어 환호할 정도의, 그리도 어마어마한 걸작이었단 말이던가...

과연 그러한가....

그리고, 그 질풍노도 주변인적 아노미 상태가 채 정리되기도 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형님 감독의 또 하나의 복수무비 <미스틱 리버>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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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하고 갈 필요가 있다. <미스틱 리버>는 절대 장사 잘 될만한 영화가 아니다. 보면서 재밌어 죽을 영화도 아니다.

사실을 말하면, 전날 잠 좀 못자고, 배 부른 상태에서, 따끈따끈하고 자리 퐁신퐁신한 극장 들어가면 졸기 딱 좋을 영화다. 화면의 톤은 푸르딩딩한 회색조고, 등장인물들은 영화 내내 절대 심각 완전 진지의 자세를 견지하며, 그 흔해 터진 CG 한 번 안 나온다.

‘15년 동안 가둬놓기’ 또는 ‘4년 동안의 혼수상태’ 같은, 그 시작부터 거한 설정도 없다. 당연히, ‘64층 펜트하우스에서의 최후의 대결’이나 ‘거대 요리집 전부 날려먹는 최후의 대결’같은 대박급 클라이막스도 없다. 물론, 쳘벅쳘벅 피떡칠도 없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히 말하면, 그냥 같은 동네 친구들이었던 남자애들 3명이, 다들 애 아빠급 어른으로 자란 뒤에 겪게되는 동네 규모의 살인사건, 그리고 그걸 둘러싼 동네 규모의 복수전, 그게 전부다. 사건은 그야말로 한밤의 강물처럼 조용히 흘러가고, 요즘 같아서는 안 나오면 더 깜짝 놀랄 것 같은, 그 흔해 터진 막판 뒤집기도 없다.

하지만, 강물은 깊을수록 더욱 조용히 흐른다고 했던가. 이 영화가 보유한 내공은, 쌔끈한 주연배우의 얼굴이 대박만하게 아로새겨진 포스터같은 것으로는 결코 드러낼 수 없는, 실로 깊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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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당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주연배우들의 이름이다.

숀 펜, 팀 로빈스, 케빈 베이컨..

얘들 셋이서 동시다발적으로 출연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당 영화는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 영화에서 이들은 ‘스타’가 아닌, ‘배우’다. 그리고, 영화도 이들을 ‘스타’가 아닌 ‘배우’로 써먹을 뿐이다.

이 大王급 배우들의 이미지나 스타일을 가지고 영화를 끌고 나간다는 생각없이, 얘들을 철저하게 영화속에 녹여버린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숀 펜은 정말로 왕년 강도질 경력이 있는 동네 슈퍼 주인이 되고, 팀 로빈스는 정말로 어렸을때의 상처 덕분에 자폐성이 농후해져버린 횡설수설맨이 되며, 케빈 베이컨은 형사가 된다. 심지어는 케빈 베이컨의 파트너 형사로 나오는 로렌스 피쉬번 역시도 네오 형님 ‘모피어스’가 아닌, 고참 형사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생각 또한, 영화 보고 난 다음에 뒤늦게 들었던 것일 뿐,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우와, 연기 죽인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저 사람은 연기를 하고 있다’라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게 하는, 필자가 최고의 경지라 생각하는 연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

••

물론, 저런 정도의 배우들을 줄줄이 사탕으로 모아놓고도, 뭔가 튀어보려는 잡스런 잔재주 하나 없이, 도도히 흐르는 한강수와도 같은 흔들림 없는 영화를 만들어 낸 것은, 당 영화의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큰형님의 공력일게다.

사실, 이런 정도의 배우들을 한군데 모아 놓을작시면, 뭔가 거하게 한 방 해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더냐. 사정이 그러하다면, 배우들 인건비조차 건질 수 있을 것인가 불투명한, 이러한 잔잔진지심각필의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는 것은 더욱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리요.

허나 <미스틱 리버>의 배우들은 자신의 스타성을 내세우는데 관심이 없고, 감독도 자신의 스타일을 내세우는데 관심이 없다. 그저 영화를 통해서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걸 통해서 세상에 뭔가를 얘기하는데만 관심의 초점을 맞춰놓고 있을 뿐...

오히려 그리하여, 당 영화는 훨씬 더 많은 얘기를 담은, 훨씬 더 깊은 강이 되었다.

뭔 얘기를 그리도 많이 담았냐구? 여기선 다 얘기하기 어렵다.

그 얘기들은 보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달라져버리는 얘기니까 말이다.

슬프게 흐르던 마지막 그 대사, "아마 현실속의 우린 모두, 지하실에 갇힌 11살 짜리 꼬마일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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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읊어보자.

여튼, 위에 얘기한 바와 같이, 최근에 개봉한 복수무비들 중에서 가장 대박을 칠 영화와 아닐 영화는 너무나 확실하다. 하지만, 그게 영화가 괜찮은 순서인지는, 재래식 언론들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확실하지 않다.

물론, ‘작품성’ vs ‘흥미성’ 뭐, 이딴 식으로 촌시러운 구분으로 나눠서 영화를 얘기하고 싶은건 아니다. 하지만, 스타일과 센세이션 그리고 잔재주로 승부를 걸어, 나름대로 재밌긴 하지만, 결국 그걸로 그친 영화와 아닌 영화를 구분해주는 건 기본이다. 적어도 영화 언론이라고 마빡에 간판을 달고 있는 곳이라면 말이다.

재래식 영화 언론들이여. 그대들이 만들어 낸 ‘우리가 걸작이라 하는 영화 = 재미없는 영화’라는 공식을, 이제와서 ‘재밌는 영화 = 걸작이라고 해야하는 영화'라는 또 하나의 말도 안되는 공식으로 대체할 필요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늙은보이>를 위시한, 이번에 개봉된 복수무비 3 파전이 남긴 가장 큰 메시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