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기고] < 타인의 삶 >
2007 5. 2
좋은 영화를 만난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는 일은 특히나 더 그렇고.
더구나, 무슨 일일 드라마도 아닌 것이, 한달 평균 열다섯 편도 넘는 영화들이 떼개봉되고 있는 지금같은 상황에서 좋은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는 건, 거의 냉장고에서 일주일 묵힌 사이다를 따자마자 콧구멍으로 완샷하는 난이도를 능가하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짚어보지 않을 수 없겠다. 과연 ‘좋은 영화’란 어떤 영화를 일컬음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각종 요소가 짬뽕져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인 영화를 훌륭하게 만드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하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그 중 가장 결정적인 건 결국 그 영화가 전달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를 장장 485분 동안 꼼짝도 않고 촬영한 앤디 와홀의 <엠파이어> 같이 아방한 영화들이 나쁜 영화라는 얘기는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고,
여튼 그러한 면에서 <타인의 삶>은 좋은 영화의 한 전형이라고 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는 영화다.
사실 좋은 영화를 권할 때 칠 가장 적합한 대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그냥 보러 가세요’일테지만, 지금은 워낙에 준사기성 마케팅이 미세먼지 마냥 대기 가득 떠도는 시대인지라, 이 영화의 훌륭성에 대한 몇 마디를 드리지 않을 수 없겠다.
일단 이 영화의 제목 얘기부터.
당 영화를 수입한 ‘백두대간’이라는 영화사가 과거 <타인의 취향>이라는 또 하나의 걸출한 영화를 수입했던 영화사인 관계로, <타인의 삶>이 <타인의 취향>의 후광을 업고 대충 묻어가려는 뮝기적스런 영화가 아닌가하는 의혹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제 자체가 ‘Das Leben der Anderen(타인들의 삶)’인 마당에 대체 어쩌란 말이더냐, 최소한 이 제목은 혹세무민을 위한 주최측의 농간은 아니므로 안심하셔도 좋겠다.
다음으로 국적. 모르긴 몰라도 이 영화의 국적이 독일이라는 점에서 두려움에 떠시는 분들이 적지않게 계시리라. 물론, 나랑 별루 안친한 독일어라는 언어를 두 시간 넘는 시간동안 듣고 있어야 한다는 점은 상당한 부담요소로 작용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보장해드리건대, 그런 점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오직 첫 5분 정도일 것이다. 왜냐. 그 뒤로는 이야기에 몰입이 되는 관계루다가 저게 독일언지 수리남언지 코트디부와르언지 신경을 쓸 새가 도대체 없어지거든.
이건 연출 스타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독일 출신 영화들을 보신 적이 있는 분들은 익히 아시겠지만, 독일 영화는 전반적으로 실리카겔 30톤 분량 정도의 건조한 연출 스타일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당 영화는, 그런 건조한 와중에서도 대단히 영화 기초 교과서스러운 연출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심각한 갈등을 때리는 부분에서는 얼굴 반쪽은 완전 밝고 나머지 반쪽은 완전 시커멓게 되는 조명을 쓰고, 반대의 장면에서는 모공까지 보일 정도로 환한 조명을 쓴다던가 말이지.
하지만 이런 ‘완전 기초에 충실한’ 연출은 오히려, 주연 배우들의 훌륭해마지않은 연기와 함께, 이 영화의 가장 보석스러운 부분이다.
꼭 필요한 곳에서만 꼭 필요한 양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손을 대는, 옛날 폴크스바겐 자동차같은 연출은, 관객들에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이 영화의 절정이자, 최고의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 놀라운 힘을 드러내게 되는데, 아니 그럼, 이 영화에도 무슨 엄청난 반전 같은 게 있는 거냐구?
당 영화가 <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센스>이래 아직까지도 그 질긴 명줄을 이어가고 있는 가소로운 반전 무비 나부랭이였다면, 설마 이리 거품 물며 추천하겠는가. 모든 이야기가 끝난듯한 대목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타인의 삶>의 막판 스퍼트는, 그 모든 잡스런 반전 무비들을 쪽팔려 마지않도록 하기에 모자람이 없음이라 할 것이다.
헌데, 이 영화관람에 있어 거의 유일하게 아쉬운 대목이, 바로 이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하니, 그것은 바로 마지막 대사의 자막 번역이었다. 다소의 애로사항이 있었겠지만, 그 절묘한 중의적 대사가 그냥 밋밋하게 번역된 것은 사뭇 안타까왔다...
...라고 하려니, 하긴, 거의 영희야안녕철수야놀자 수준의 독일어 실력만을 갖춘 필자 역시 알아먹을 대사였으니 문제 전혀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
여튼 영화의 마지막에 당도하여 영화 시작 때와는 전혀 반대의 관점에서 독일어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경험 또한 당 영화같이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보았을 때만 가능한 경험일 것이다.
자, 이 좋은 계절의 끝자락에 독자 여러분께 선물 하나 드리면서 마치고자 한다.
선물이란 다름아닌 ‘부디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볼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는 말씀 한 마디다.
그게 뭐 선물 씩이나 되냐구?
어허,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만, 좋은 영화를 놓치지 않고 극장에서 만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니까.
- CJ 사외보 <생활속의 이야기> 2007년 05/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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