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8. 27

< 오!브라더스 > 적정 관람료 (7000원 기준)

[ 인하요인 ] 작위적인 캐릭터 설정 (특히 이범수가 연기하는 '동생') : - 2000원 그 설정 가지고 줄줄 이어지는 웃겨보려는 해프닝들이 안웃기기 때문에 유발되는 피로감 : -2000원 벌여 놓은건 많은데 수습이 안되는 시나리오 : -2000원 계 -6000원

[ 인상요인 ]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정도의 극악무도함까지 가지 않은, 나름대로 인간미..비슷한 거시기를 살리려고 한 이야기 : +700원 가끔씩 나오는 웃긴 설정과, 마지막 장면의 깔끔한 마무리 : +300원 계 +1000원

적정 관람료 : 7000원 + 1000원 -6000원 = 2000원

세상에서 가장 웃긴 코메디는 무엇인가.

그건 물론 본의아닌 코메디다. 본의아닌 코메디라 함은, 본인은 정작 웃길 의도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웃겨마지 않는 코메디를 말한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안웃긴 코메디는 무엇인가.

그건 물론 본의아닌 코메디의 반대쪽에 위치한 코메디, 즉, 웃기고 싶어하는 의도가 구구단 1단 만큼이나 명명백백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웃기지 않은 코메디이다.

이러한 코메디는 결국 보는이로 하여금 서글픔과 함께 연민의 정을 촉발시키는 경향이 있는 바, 이들은 코메디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종종 본의아닌 비극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이렇게 모든 코메디는 본의아닌 코메디와 본의아닌 비극의 사이 어디엔가 위치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본의아니지않은 코메디 중 가장 끗발이 높은 것은, 웃기려는 의도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면서 웃기는 코메디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포스터에서부터 나는 코메디여요를 확실히 못박고 들어갔던 <오!브라더스>를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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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어디가?" "너 버리러!"라는 카피가 붙은 이 영화의 포스터로 인해 상상되는 줄거리는 대충 이렇게 될 것이다.

뭐 이런거.

하지만 일단, 이 영화의 동생은 나이먹은 바보가 아니다. 이범수가 연기하는 동생은 조로증 걸린 12살짜리 아이였던 것이다. 그렇다. 늙은 바보가 아니고, 늙어보이기만 하는 초등학교 4학년 애인거다.

설정이 이러하니, 동생 캐릭터에게서 귀여운 면모나 순진무구한 면모 같은건 기대하기 어렵다. 요즘 초등학교 4학년 애들이 어떤데, 순진무구 따위를 논할 수 있단 말인가.

뭐 하지만, 조로증 걸린 초등학교 4학년생 가지고도 위같은 코믹 감동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할것도 없을 것이다. 다음 두 가지가 제대로 받쳐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오!브라더스>에는 거의 이런걸 찾아보긴 힘들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초등학교 4학년급 아동의 행동양태란 (1) 유치원생도 안입을듯한 극아동적 의상과 (2) 그 옛날 <호랑이 선생님>의 캐릭터들이나 쓸법한 비현실적 아동 말투, 그리고 (3) 건담 장난감 가지고 놀기 정도다.

거기에 이범수의 부담 이백만의 (4) 오바적 아동연기가 가세하면, <오!브라더스>의 동생 캐릭터는 거의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띠게 된다.

하긴, 애초에 이 영화는 조로증 걸린 12살짜리 아동에 대한 제대로 된 묘사 같은건 별루 생각하지도 않은 듯 하다. 조로증 아동이라는 설정은, 뭔가 웃기는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한 세팅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조로증 걸린 애' 정도는, 그 화려한 세팅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이 12살 짜리 조로증 아동은 길거리 속옷 노점상에서 부라자 냄새맡다가 냅다 머리에 뒤집어쓰는 등의 변퉤이적 습성을 가지고 있는 상당히 밝히는 놈이다. 게다가 당뇨병까지 걸려서 수시로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댄다.

그리고, 오랫동안 장애아 시설에서 키워져서 외로움을 많이 타는데다가, 뭔가 말하지 않는 가족의 비밀같은 것도 가지고 있고, 밤새 <악마의 인형 2> 비디오를 죽자사자 봄과 동시에, 2세 미만 영유아적 의상을 상당히 선호한다. 가끔 바지를 안 입고 출연하기도 하는데, 물론 그 영문은 도대체 알 수 없다.

압력밥솥 안전장치도 아닌데 3중 4중으로 각종 세팅을 해놓은 이 동생 캐릭터..

그는 마침내, 밀린 빚 받으러다니는 흥신소 직원인 형의 사주를 받아 조폭 흉내를 내게 됨으로써, 각 분야를 망라한 그 화려무쌍한 각종종합설정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극명히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그 모든 설정들을 순열조합스럽게 조합시킨 에피소드들이 거의 앞뒤 맥락같은건 없이 줄줄 나열되기 시작한다.

그 내용이 뭐냐구? 직접들 상상해보시라.

모르긴 몰라도, 실제 영화와 그닥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이범수는 평소에 배다른 형인 이정재에게 '우리는 배꼽을 맞춰보면 닮은걸 알 수 있다구 아빠가 그랬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언젠가 이들이 실제로 배꼽을 맞춰보는 장면을 연출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 실제로 등장하는, 개과천선한 이정재가 배꼽을 맞춰보려고 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시작됨과 동시에, 위와 같은 타이밍에 누군가가 들어와서 오해를 사게 된다는 설정이 예감된다. 그리고 그 예감은 결코 빗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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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코메디만큼 나만 좋으면 그만스러운것도 없으니, <오!브라더스>의 코메디가 웃긴가 아닌가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코믹이고 뭐고 다 좋은데, 어쨌든, 적어도 뭔가 전체적인 이야기의 뼈대 정도는 제대로 갖춰놓고 코믹상황이라는 살을 갖다 붙여도 붙여야 한다는 것 말이다.

전체적인 뼈대 자체가 기어처럼 맞물려가면서 점점 코믹한 상황을 고조시켜나가는, <아멜리에>같은 그런 하이한 코메디까지 바라는 것도 아니다. 오바나 소품이나 작위적인 설정에 억지로 기대지 않고도 잔잔한 웃음을 번지게 하는 <어바웃 어 보이> 같이 한 끗발 높은 코메디까지 바라는 것도 아니다. 물론, 우디 앨런 영화들같은 거물급 코메디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코메디가 되었건 뭔가 제대로 된 줄거리나 구성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허벌나게 웃긴 코메디를 만들기 전에, 우선 제대로 된 영화부터 만드는게 먼저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영화는 마치 비엔나 쏘세지처럼 줄줄 웃겨보려는 에피소드들을 나열한다. 그러다가 막판에 가서 허겁지겁 '웃다보니 감동의 눈물 한 방울' 뭐 이런 엔딩을 잡기 위한, 새로운 에피소드 두세개를 또 새로이 들고 나온다. 이런식으로 막판 억지 감동 안 쥐어짜면 영화진흥법 위반이라도 되나.

캐릭터나 줄거리에 설득되기도 전에 다짜고짜 각종 설정 들이밀고, 별로 기발차지도 않은 그 설정 가지고 한 번 웃겨보려고, 뜬금없이 이상황저상황 줄줄 내놓는 코메디는 이제 그만 할 때가 됐다.

그런식의 쥐어짜는 오바 코메디가 벌써, <주유소 습격사건> 이래로 몇년짼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