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 revisited
2006 4. 22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철저하게 니콜라스 케이지의 영화로 알려져 있다.
일단 제목부터가 그렇다. 결국 영화에서 '라스베가스를 떠난' 인물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벤' 밖에 없었으니까 말이지.
하지만 오늘, 거의 십년만에 다시 보게 된 이 영화는 지금까지 못봤던 부분을 보여주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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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엘리자베스 수의 역할은, 말하자면 '훌륭한 액자'다.
원래 액자라는 물건의 본분은 그림을 더 돋보기이게 하는 것인지라, 액자가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그 존재감은 점점 반비례해서 줄어들게 된다.
이 '훌륭한 액자의 딜레마' 덕분에 엘리자베스 수의 연기는 처음부터 니콜라스 케이지의 존재감을 뛰어 넘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연기가 훌륭할수록, 그 빛은 점점 더 그녀로부터 먼 곳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이 영화에서의 엘리자베스 수가 좋다.
청순하고도 예쁜 이미지로 알려졌던 여배우가 창녀의 연기를 뻔뻔할 정도로 잘 해냈기 때문도 아니고, 당대 최고의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의 신들린듯한 연기에 호흡을 잘 맞췄기 때문도 아니다.
그건, 손을 뻗칠수록 점점 멀어지는 빛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과, 그것이 주는 위안 때문이다.
그 눈길은 이렇게 말한다. 빛은, 굳이 그걸 잡지 않더라도 우리를 항상 비추고 있는 것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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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라스베가스엔 두 개의 달이 떠 있다.
손가락으로 집기만 해도 부스러질 것 같은 초승달 두 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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