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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ook
한동원의 글 수첩

추적형 점원의 문제

2005 5. 22

 

엘리베이터 안에서 잔잔한 미소와 함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직장상사,

마요네즈와 머스타드 소스를 빵보다도 두껍게 발라놓은 핫도그,

청치마 미니 스커트에 검정색 그물형 스타킹을 착용한 40대 후반의 여성,

군고구마 리아카 만한 배기구와, 도무지 그 근본과 영문을 알 수 없는 각종 스티커와, 웬만한 경비행기의 날개로 써도 충분할 것 같은 리어 스포일러와,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방금 떼 온 것 같은 전구를 온 몸에 붙인 채, 볼륨 120의 댄스음악을 틀고 돌아댕기는 자동차 등등...

이렇듯, 이 넓은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부담스러운 것들이 존재한다. 허나, 필자 개인적으로는 '추적형 점원'만큼 강력한 부담을 안기는 존재는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 '추적형 점원'이란 물론, 손님과의 간격을 50cm 이내의 초 근접거리로 유지한 채, 열추적 공대공 미사일마냥 손님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끊임없이 각종 권유와 질문과 평가와 제안과 보고를 일삼는 점원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러한 유형의 점원은 차분하면서도 충분한 관찰과 냉철하면서도 명민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장르의 가게인 옷 가게에 특히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들이 가게를 방문한 손님에게 안기는 부담의 유형은 매우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아무런 목표한 바 없이 가게를 방문한 손님에게, 이제 막 골인지점을 통과하려는 제자를 향해 달려가는 마라톤 코치마냥 돌진하여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라는 질문과 함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며 손님을 응시하는 그 인트로 대목이야말로 단연 백미라 생각한다.

도대체 이런 질문에 망설임 없이 시원시원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의 뚜렷한 자의식과 목적의식으로 무장한 채 옷가게에 왕림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지 모른다. "아니, 그냥 구경하러 왔어요 라고 대답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내 경험상 이런 대사를 날렸을 때 "그럼 천천히 구경하세요."라며 순순히 물러서는 점원은 15%도 채 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그런 대사는 그 점원으로 하여금 '오늘의 패션제안'의 물꼬를 트게하는 빌미가 될 뿐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정말이지 소리높여 외치고 싶다. 느긋하게(또는 멍하게) 옷을 구경하는 손님들을 참아줄 수 없는 가게라면, 가게 입구에 빨간색 글씨로 '무엇을 사러오신건지 확실하게 결정하고 입장해 주십시오'라고 적어놔 달라고 말이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어쨌든, 얼마 전에 길거리를 가다가, 쇼윈도우에서 우연히 괜찮아 보이는 옷을 발견하게 됐다. '그래, 이번만큼은 확실한 목표가 있다'라는 생각으로 자신감에 흠뻑 젖어 매장안으로 진입한 나는, 당당하게 해당 의복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점원의 대답은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아, 그 옷은 2층에 있거든요?"

응? 2층?

허나 이러한 돌발적 반응에 동요치 않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며 2층을 향해 천천히 발길을 옮기려던 나는, 그러나, 더 이상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와 함께 2층 계단을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강력한 추적으로 인해 일거에 아노미 상태로 돌입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순간적으로, 결코 입에 담지 말았어야 할 대사를 한 마디를 흘리고야 만다.

"아니, 꼭 따라오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아아...

나는 보았다. 그 순간 한달 쯤 말린 가래떡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녀의 얼굴을...

그 문제의 2층에서 우리가 어떠한 분위기를 연출했던지는 여기에서 굳이 얘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

프랑스라는 나라를 딱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 점원들의 '서비스 테크닉'만큼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거의 방목에 가깝게 손님을 자유로이 내버려 두면서도, 꼭 필요할때는 어김없이 손님에게 달려오던 그곳 점원들의 테크닉은, 사실 은근히 감탄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추적형 점원들을 만날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상대가 원하기 전까지는 멀찌감치서 조용히 지켜봐주는 것.

이거야말로 배려의 최고의 형태가 아닐까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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