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크>의 사진들
2005 4. 8
좋은 영화에서는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발견된다.
오늘 약 34번째 정도로 추산되는 <스모크> 관람을 하면서 또다시 그걸 느끼게 됐는데,
이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그렇다. 이 장면은 밤늦게 담배를 사러 간 폴이 우연히 오기의 '필생의 역작'인 사집첩을 보게 되는 장면이다.그런데 여기에서 폴이 훌훌 넘기는 사진첩들을 자세히 보면, 뭔가 좀 수상스런 것이 발견된다.
일단 폴이 보는 첫 페이지.
그리고 다음 페이지.
첫 페이지의 왼쪽 위 사진과, 다음 페이지의 왼쪽 아래 사진을 눈여겨 봐주시길. "매일 같은 장소의 아침 8시 30분"을 찍은 사진에서 똑같은 사진이 두 번 나오고 있다.웨인 왕의 작고도 예리한 눈이나, 마치 셜록 홈즈의 확대경 같은 폴 오스터의 큰 눈도 이 실수는 집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하긴, 덕분에 나 같은 사람은 이걸 발견이랍시고 뿌듯해하고 있긴 하다. 여튼,
이런 '옥에 티'같은 거 말고도, 또 있다. 자, 이 사진.
이 사진 역시 오기의 사진첩에 있던 사진인데, 사진 속의 여인은 다름이 아니라 2년 전 죽은 폴의 아내다.
그런데, 이 장면 다음 다음 쯤에 나오는 폴의 작업실 장면을 볼작시면, 책장 위에 놓인 흑백 사진 하나를 볼 수 있다.
힘주어 사진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 사진속의 여인은 오기의 사진에 찍혀있던 여인, 즉 폴의 아내다.
그렇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저 장면을 위해, 제작진은 저 여인의 사진 두 방을 찍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것도 '이야기'가 숨어있는 사진 두 장을 말이다."수많은 물건들이 천일야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라는 폴 오스터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폴의 아파트 세트는 정말로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
은유적인 표현으로의 '얘기'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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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에서는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발견된다.
모든 좋은 것들이 그렇듯이.
Smoke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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