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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ook
한동원의 글 수첩

극장에서 본 우디 앨런

2004 2. 21

 


며칠 전,

내 함 봐주리라 오랫동안 별러왔던 <애니씽 엘스>를 드디어 보는데 성공했다.

근데, 영화로 글 써서 먹고사는 자로서 이건 영업 비밀에 가까운 얘기겠으나, 사실 필자는 이번에 처음으로 극장에 가서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본 것이었던 것이었다...

흠. 뭐,

그럴수도 있지.

여튼, 비디오 화면이 아닌 스크린을 통해서 본 우디 앨런은, 필자에게 새삼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깨닫게 만든다.


작다 : 우디 앨런은 큰 스크린으로 봐도 여전히 작다. 미니어쳐 옷을 입혀놓은 땅콩 같다.

뉴욕에 가보고 싶다 : 특히 제이슨 빅스가 머릿속을 정리한다며 걷던 해 떨어지는 뉴욕의 풍경은, 이 욕구를 결의의 수준으로 격상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대목에서, 난 가봤는데...라는 위험한 발언은 부디 삼가주시기 바라고.

스탠드업 코메디 같다 : 바로 이 점이 우디 앨런을 극장에서 보고 있다는 실감을 가장 강력하게 느끼게 해준 부분이다.

혼자 영화를 볼 때는 절대 알 수 없었던,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일제히 와글와글 웃으면서 비로소 절절히 느껴지던 그 스탠드업 코메디 필..

30년 전에 접은 직업의 필이 아직까지도 배어 나오는 것을 보면, 과연 첫 직장은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더랬다.


* *


최근 우디 앨런이 한 인터뷰에서 '형님도 이제 젊은이들의 감각과 맞추려고 노력하셔야하지 않겠는가'라는 삽질성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고 한다.

"난 젊은 애들을 별로 존중하지 않는다. 왜 그래야 되는데?"

필자가 항상 그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데 있다.

이번 영화가 그리 썩 좋은건 아니었다만, 그래도 역시.


drawing by Hahn Do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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