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S.의 추억
2005 2. 3
기타를 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필자 역시 '밴드'라는 제도를 나름대로 다채롭게 경험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밴드들이 그러하듯, 필자 역시 여타의 멤버들과 함께 밴드의 이름을 짓는 일에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였더랬다.
그리고, 그런 밴드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러하듯, 필자가 몸담았던 밴드들의 이름 역시, 이 자리에서 언급은 켜녕, 그냥 살짝 머릿속에 떠올려주는 것만으로도 냅다 도주 및 증거인멸을 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쪽팔리는,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것이었다.
아아,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그 이름들이 자꾸 떠오를라구 한다...
이럴땐 국민교육헌장이라도 암송하는게 상책이지.. 여튼,
필자가 몸담았던 각종 밴드들의 그 극악한 명칭 중 오늘날까지도 단연 독보적인 백미로 꼽히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
'유 령 선'
이다.
필자가 이 명칭을 감히 공개할 어머어마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불행중 다행히도 이 이름을 필자가 직접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밴드는 필자가 다녔던 학교의 스쿨 밴드였는데, 이 극악한 이름을 버리지 못했던 건 오로지 창단 선배들이 지은 이름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물론, 창단 멤버 선배들 중 누가 이 이름을 지었는가는 지금까지도 미궁으로 남아있다. 그만큼 인간은 사회적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동물인 것이다. 어쨌든,
이 천형과도 같은 이름을 달고 각종 대외적 활동을 해야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인 우리는, '이대로 죽을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장기간에 걸친 고뇌와 번민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도달해내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밴드명을 'U.R.S.'라 한다'.
물론, 이 역시도 살벌난 이름임에는 틀림없었으나, 당시는 나름대로 헤비메탈 전성기의 끝물이라 이런 식의 이름이 나름대로 유행하던 때였고(ex> N.EX.T.), 어쨌든 우리는 '유령선'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하고 있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첫 연습을 위해 종로의 모 '유료 연습실(그런게 있었다)'에 몰려간 우리는, 연습실 대여 신청서의 '밴드명'란에 내심 당당함과 뿌듯함, 심지어는 자부심마저 느끼며 'U.R.S.'라는 세 글자를 힘주어 적어 넣었다.
그런데, 그 신청서를 본 주인 아저씨의 반응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U.R.S.? 우루사 준말이야?"
* *
우루사...
지금도 우루사 광고만 보면 자꾸만 그때의 추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