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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ook
한동원의 글 수첩

오늘의 통나무

2004 11. 24

 



"아직까지도?"라는 얘기를 들을 게 뻔하지만, 그래, 나는 '아직까지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다.

벌써 이 얘기를 하는 순간 여전히 화장실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 대학생을 바라보는 듯한 눈길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만, 흠. 뭐, 흥.

내가 이렇게도 오랫동안 그의 팬일 수 있는 이유를 꼽아보라면 물론 얼마든지 이것 저것 꼽을 수 있겠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꾸준히 수면 위에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문장을 써낸다는 점일 것이다.

그 문장들의 대부분은 전혀 힘을 들이지 않은 듯한 문장이다. 어쩌면 이 '힘들인 흔적 없음'이야말로 그의 문장이 바이칼호만큼이나 광막한 이 생각의 호수에서, 온갖 잡생각이라는 이름의 물을 잔뜩 빨아들이고도 용케도 가라앉지 않는 통나무로 남아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은 이 문장이 수면 위로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이들의 진정한 적은 국가 권력이 아니라 상상력의 결핍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한 가지 덧붙일 게 있다.

'이들'에게 뿐만이 아니고, 그 누구에게라도 상상력의 결핍은 무시무시한 적이라는 사실 말이다.

오로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의 차이만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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