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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강력한 반전을 세상에 내놓으며 관객들을 일제히 충격과 불신의 도가니탕으로 빠뜨렸던 <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센스>가 망가뜨렸던 것은,

단지 영화가 끝날때까지, 아니, 심지어는 엔드 크레딧의 꼬리가 올라갈때까지도 '아냐, 분명 이대로 끝날 리 없다. 분명 뭔가 있을꺼야..'라는 단말마의 중얼거림을 흘리며 스크린을 향해 의혹의 도끼눈을 던지는 관객들 뿐만은 아니었다.

관객들보다 더욱 심각한 주화입마의 화를 입었던 쪽은 오히려, 누군가 그거 안나오면 극장에 뱀 풀어놓겠다는 협박편지를 일괄발송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죽어라 되도 않는 반전에 또 반전 뭐 이런거 하느라, 나중에는 자기도 뭔소린지 알아먹을 수 없는 횡설수설을 하염없이 늘어놓으며 자멸해간 수많은 국내외 영화 제작진들이었다.

이번 기회에 필자는, 영화계 전반을 향하여 이렇게 소리높여 촉구하고 싶다. 그런거 절대 신기하지도 않고 재미 또한 조또 없으니 인제 제발이지 고만 좀 하기 바란다.

그러나, 제발이지 고만 좀 했으면 딱 좋을 것이 어디 '되도 않는 반전무비' 뿐이랴.

<와호장룡>과 <매트릭스>가 주창하면서 일련의 '반전무비'들 만큼이나 강력한 영향과 파급효과를 미쳤던 '우아무쌍 액션' 또한, 수많은 되도 않는 따라쟁이 영화들을 배출해내며 관객들을 본의 아니게 주화입마에 빠뜨리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올 가을, 이들 두 가지 주화입마가 한 영화속에 온전히 구현되기에 이르니, 그 영화의 제목하여 <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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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아시다시피 당 영화 <연인>은 <영웅>에 이은 장예모 감독의 두번째 무림 영화인 바, <영웅>에서 일찌감치 <와호장룡>의 스타일을 그대로 쎈타링 받아, 거기에 다량의 물량을 첨가하여 뻥튀기 시킴으로써 그것을 자신의 스타일로 기냥 접수해버리는 호방한 중화혼을 보여줬던 장예모 감독이었기에 금번 <연인>에 모아진 기대 또한 남달랐다.

게다가 <연인>은, <영웅>에서 '천하통일 대의를 위해 이 한 목숨 초개와 같이 바치리' 뭐 이런, 자기도 못하는 걸 테마 메시지로 날렸다가 WHO 일일 권장량의 약 53배를 상회하는 분량의 욕을 얻어 먹었던 바 있던 감독이 처음부터 '이번엔 그런거 안했어요'라는 확답을 박고 들어간 영화이었기에, 더욱 부담없이 관람하는 액션 한 판에 대한 기대가 증폭되었더랬다.

그리하여 마침내 추석시즌을 앞두고 뚜껑을 열어제낀 <연인>...

<영웅>의 '천하통일 어쩌구저쩌구'가 차지했던 자리를, <연인>에서는 각종 '본의 아닌 코메디'들이 대신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저 멀리 중원까지 널리 퍼져있는 사실이므로 재삼 거론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렇다면 당 영화의 '그림'과 '액션'만큼은 여전히 아리따운 한 폭의 산수화에 다름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 아름다운 그림에 숨이 딱 멎었더랬다는 세간의 자자한 칭송과는 달리, 이번 <연인>의 비주얼은 치사량에 가까운 갑빠를 함유함으로써 당 영화의 '본의 아닌 코메디'와 깊이 통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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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연인>은, 기방의 특별 스테이지에 360도 쭉 돌려 배치된 북들을 향해, 스미스 요원 총알 날려주듯 콩알 무더기를 사방으로 흩뿌려주는 유덕화의 유장한 슬로우 모션,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콩알 궤적 추적 CG로부터 그 비주얼 행각을 시작한다.

물론 '혼식을 하자'는 공익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까지는 하등의 부족함이 없었으나, 종자 파종 동작을 액션에 접목함으로써 새로운 농림문화 창달에 이바지하고자 했던 감독의 충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데까지는 다소 역부족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남긴 이 장면은 그러나,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이어진 장지이의 슬로우 모션 댄스동작은 그 아쉬움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콩 한 알 한 알의 궤적과 순서를 낱낱이 기억하여 소맷자락을 이용, 그 순서대로 정확하게 북을 타격하던 장지이의 슬로우 모션은, 치매 예방의 생활화라는 메시지를 비주얼하게 형상화하면서 노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에 소홀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불어, 두 사람 주변으로 파묻혀버릴 듯 지천에 꽃이 피어있는 동산 위로 굳이 한참 말을 달려, 달리는 마상에서 어렵사리 꽃을 꺾어다가 그 꽃다발을 장지이에게 선물하였던 금성무의 사서고생적 액션은 남부여대 부창부수의 미덕을 몸소 실천한 본의 아닌 코메디계의 훈훈한 미담으로서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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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시 <연인>이 준비해둔 본의 아닌 코메디는, 위 장면들에서 각자 발군의 기량을 과시했던 금성무, 유덕화, 장지이 이 세 사람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후반부부터 그 본격적인 스타트를 끊는다.

변심한 연인을 강제로 어찌해보려다가 그만 조직의 두목님에게 껄림으로써 순식간에 꼬리를 깨갱 내리고 분루를 삼키며 돌아서는 사나이의 심금을 울리는 쪽팔림은 곧이어 “그녀가 나를 버리게 만들고, 니가 살아 돌아갈 줄 알았더냐!”라는, 근래들어 보기드문 대형급 쪼다 대사로 불출됨으로써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의 민망함은 거의 치사량에까지 육박한다.

그리고 이 대사의 탄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두 남성 주인공들은, 마침내 한 여인을 위한 박터지는 칼싸움을 낙엽지는 가을에서 눈내리는 겨울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수행해냄으로써 영화사상 최장의 칼싸움으로 기록될 기념비적 장면을 연출해낸다.

그리고 한참전에 이미 죽은줄로만 알았던 그 비련의 여인은, 칼싸움이 교착상태에 빠진 10여분 후가 되자 홀연히 되살아나면서 영화사상 최장의 가사상태를 연출, 남성 등장인물들의 분투에 화답함으로써 마침내 이 세 남녀는 본의 아닌 코메디계에서 허물어질 수 없는 새로운 금자탑을 세워내는데 성공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

와이어에 매달려 대나무 밭을 인간 로켓티어 마냥 날아다니며 대나무 대포를 쏘든, 화살 네방을 동시다발적으로 날려 네명의 적군을 한큐에 보내버리든, 칼 던져서 돌을 반으로 쪼개든, 그리고 그것을 아무리 뽕나는 슬로우 모션과 CG로 데코레이숀 하든 그 모든 것은 본의 아닌 코메디로 귀결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강력한 중력의 배후에는 때깔 좋은 그림과 특수효과에만 의존함으로써 내용 나부랭이는 말이 되건 말건, 캐릭터 나부랭이는 웃겨지건 말건 신경을 꺼버리는 비주얼 지상주의적 액션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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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안다.

과거 박노식, 장동휘, 김희라 등의 기라성같은 주먹무비의 거성들에게 와이어나 CG 따위의 구차한 도구는 결코 필요치 않았음을. 이 형님들이 뜨거운 한 여름에도 착용하는 것을 잊지 않았던 흑색 가죽 장갑이 내뿜는 차가운 말표 왁스 광택 하나만으로도 적들은 초겨울의 마른 낙엽처럼 뿔뿔이 흩어져 갔으며, 그때마다 우리의 목구멍은 감동과 환희라 부를만한 무엇으로 마냥 울컥거렸음을.

그리고 어디 <외다리 시리즈>나 <용팔이 시리즈>같은 클래시컬 주먹 무비들 뿐만이랴.

불과 10여년 전, 지금의 구민회관의 스크린보다도 작은 스크린을 앞에 두고 성분불명의 향취가 가득한 후덥지근한 삼류극장의 공기를 들이마시면서도, 주윤발 형님의 썬그라스와 성냥 한 개비와 다이빙 총질에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를 얼굴가득 도포하였더랬던, 진정한 액션의 시대가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렇다. 우리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던, 그리고 흔들어 놓고 있는 영화들이란, 크레인을 동원한 100미터짜리 와이어도, 어마어마한 메모리의 워크스테이션이 가세한 CG도, 초당 1만 프레임을 넘어서는 고속촬영도 없는 허접스럽고 초라한 화면에 ‘이야기’를 담았던 그러한 영화들이었던 것이다.

다름 아닌 성룡 형님마저 CG에 몸을 의탁하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인 특수효과 과잉의 시대.

겉모양만 번드르르한 공허한 비주얼이 난무하는 이 난세는, 이제 새로운 주먹 영웅을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