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고문법
2004 8. 10
이렇게 더운 여름에 읽을 피서용 권장도서로서는 절대 선정되지 않을 것 같은 책이지만, 어쨌든 올여름 읽은 책 (그래봐야 몇 권 안 되지만) 중 가장 멋진 책이었던 <눈 먼 자들의 도시>.
폴 오스터가 <폐허의 도시>에서 만들어 냈던 '최악의 지옥'도 나름대로 상당했지만 <눈 먼 자들의 도시>에 비하면 솔직히 두 끗발 정도는 못 미치고 있다.
<눈 먼 자들의 도시>의 지옥이 <폐허의 도시>의 지옥보다 더 살벌한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찝찝함'이라는 컨셉이 있었다는 점 때문이라고 본다.
그 '찝찝함'의 구체적인 내용은 굳이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만, 여튼 그 '찝찝함'의 道를 꿰뚫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주제 사라마구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작가가 아닌가 하고, 혼자서 감탄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는 평소에 필자가 생각해 두고 있는 '최고의 고문법'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 더욱 반가움을 더하고 있다.
· ·
물론, '최고의 고문법'으로는 하루키가 제안한 '송충이 항아리' 같은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직접적이다.
모름지기 '최고의 고문법'이라면 인체에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가장 깊은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괴로움을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필자가 고안해 낸 고문법은 다름 아닌 '꿀 스웨터 고문법'이다.
그 방법과 절차는 아래와 같다.
일단, 이 고문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날씨가 더워야 한다. 물론 요즘처럼 습도가 높으면 더욱 좋다.
그런 날씨에, 죄인에게 까끌까끌한 모직 터틀넥 스웨터를 입힌 뒤 (속옷은 전혀 입히지 않는다), 의자에 꽁꽁 묶는다.
그리고 일단 한두 시간쯤 땀을 충분히 흘리도록 방치한다. (여기까지는 사전 준비과정)
죄인이 충분히 땀을 흘린 것이 확인되면, 이제 본격적인 단계에 돌입할 차례다.
온몸에 땀을 흘리고 있는 죄인 앞에, 꿀 한 통을 들고 접근한다.
이때부터 죄인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직감하고 공포에 전율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죄인의 반응 따위는 초개와 같이 무시하고, 천천히 꿀 통의 뚜껑을 연다.
그리고 의자에 묶여 헛되이 몸부림치는 죄인이 입고 있는 스웨터의 터틀넥 부분을 살짝 잡아당겨서, 그 벌어진 틈 사이로 서서히 꿀을 흘려 넣는다.
조금씩 조금씩. 꿀이 목을 타고 겨드랑이를 지나 온몸 구석구석 퍼질 수 있도록 골고루 조금씩 조금씩.
꿀과 땀이 충분히 골고루 퍼져 떡이 되었다 판단되면, 땀+꿀액의 점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 약간 시원한 장소로 죄인을 옮겨놓는다.
땀에 의해 꿀의 농도가 지나치게 묽어지면 위 과정을 반복한다.
가끔씩 목과 겨드랑이의 살과 살이 닿는 부분을 가볍게 마찰시켜 주면 더욱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만일 비용이 부담되시는 경우, 꿀은 설탕시럽으로 대체해도 좋다.)
· ·
어떠신가. 생각만 해도 모르는 것까지 줄줄 불어버리고 싶어지시지 않으시는가.
물론 뭐 그 정도가 고문이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다만, 이런 더운 여름에는 특히 이런 고문의 위력을 실감하시기 쉬우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언제나처럼 멀쩡하고 훌륭한 소설 읽고, 소설과는 전혀 관계없는 엄한 소리 한 번 해봤다.
자, 이제 말복도 지났으니, 모두모두 막판 더위 잘 버텨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