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팬들, 특히 필자를 비롯한 애니메이션 팬들이 <원더풀 데이즈>에 건 기대는 실로 남달랐다.

그 유명한 '던진 도끼 벽에 찍히기' 장면만 열번도 넘게 봤다는 사람, 본 필자 주변에도 몇 명 있을 정도다. 본 필자는.. 일곱번 밖에 안봤다.. 어쨌든,

이 영화, 뚜껑을 열고 나니 불길무쌍하게도, 이미지는 화려하고 세련됐는데, 내용이며 더빙이 황이더라.. 뭐 이런 소문이 파다하다. 심히 안타갑게도 말이다..

해서, 일단, 이 영화 사운드 얘기부터 해보도록 하겠다.

사운드

나름대로 좀 어설프긴 하지만 풋풋한 맛이 있던 남녀주연 성우들을 뺀 나머지 성우들은, 아닌게 아니라, 다분히 <똘이장군>스러운 닳고닳은 만화영화풍 성우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움우후후후후후......

특히,'부관'이라고 불리우던 나쁜놈 목소리, 특히 '우후후후후후..'하는 웃음 소리는, 극장 전체를 순식간에 70년대 분위기의 도가니탕에 빠뜨릴 정도로 강력했다.

게다가 그걸 효과음과 섞는 믹싱 또한 심각한 수준이어서, 초반에는 효과음 때문에 대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다. 덕분에 본 필자는, 스피커에 대고 "뭐라구?"라고 외쳐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더랬다.

근데, 대사를 가리는 그 효과음 자체도 상당히 빈약하고, 품질이 떨어진다.

예를 들면, 주인공 '수하'가 '에코반'의 터널 비시무리한 물이 흐르는 구녕에서 구르고, 마침내 그 끝의 절벽에서 굴러떨어지는 장면이 있다. 근데 여기에서 물소리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들리지 않으니, 그 아니 신비로울쏘냐.

이 영화 멋있는 그림 만들 돈과 시간의 10분의 1만 사운드에 더 투자했더라도, 이런 사운드는 안나왔을껄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더랬다. 그도 그럴것이, 그 멋지다는 이미지가 그 나쁜놈 목소리 하나만으로 일순 <똘이장군>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도중에 환락의 나이트 장면에서 배경으로 깔리는 야리야리 테크노스러운 음악의 가사, "난~~~ 춤을 추고 싶어~~~~~"는, 차라리 못알아 듣는것이 좋을 뻔했다.

하지만, 그런 외적 겐세이에 굴함없이, 무엇보다도 <원더풀 데이즈>가 간판으로 밀고있는 '세련된 이미지'를 즐겨야 관람료 본전은 뽑지 않겠는가. 또, 개봉때는 좀 더 나아질지도 모르지..

해서, 그 유명한, 이미지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미지

<원더풀 데이즈>의 이미지가, 기존의 국산 애니메이션들처럼 계단이던 비포장도로던 매끄럽게 떠다니던 공중부양 워킹, 총천연색 올칼라 티 최선을 다해 팍팍내는 색선정, 표면이 왁스칠 200번 한 것 같이 맨들거리는 3D CG 같은 민망한 거 절대 없다는 사실은 과연 놀랍다.

게다가 단순히 '민망하지 않은' 수준을 넘어선, 일본 애니메이션과 비교해봐도 별 손색없는 인물들의 동작이나, 나름대로 공을 많이 들인듯한 배경 설정, 메카닉 설정등은 과연 지금까지의 국산 애니메이션스럽지 않은 완성도 있는 것이었다.

특히, 인트로 부분에서 오토바이가 조용한 음악을 배경으로 웅장한 '에코반' 세트로 진입하는 장면은, 장중한 갑빠 넘실넘실 넘쳐나는 대단히 훌륭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깔끔하다거나,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는 있어도, 세련된 것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디자인 자체가 어디서 많이 본듯한 개성없는 것들이었는 데다가, 그 디자인을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직선적이고 단순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렇다. '인공적'하면 흰 금속성의 차가운 건물, '하층민'하면 녹슨 철 색깔의 지저분한 뒷골목, '제도권'하면 제복, '언더그라운드' 하면 란닝구에 가죽바지 걸친 양아복장, '자유' '하늘'하면 종이 비행기 등등등..

뭐 이런 식의, 단 한번 꺾어주지도 않은 일차원적인 상징들이 이 영화의 이미지들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그런 일차원스러움은, 주인공이 첫 장면에 쓰고 나왔던 하회탈 모양의 가면, 축제의 북청 사자놀이, '에코반'의 ..거시기..룸 입구의 사천왕상, 곳곳에 보이는 문창살 패턴 등등 나름대로 한국적이려고 노력한 이미지들이 튀어나올때 가히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원더풀 데이즈> 제공 - 한국의 美 시리즈

언제쯤이면 이런 '한국방문의 해' 찌라시에나 나올법한 '한국의 美' 개념에서 벗어날까. '한국적인 것' = '민속촌스러운 것'이라는, 초등학교 방학숙제스러운 생각은 이제 좀 그만하면 안되냐. 나름대로 '한국적'이려 했던 제작진들의 충정은 높이 산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 생각해보시라. 지금 우리가 우리나라스럽다고 얘기하는 것들이, 과연 그런 민속촌스러운 것들인가를 말이다.

어쨌든,

영화를 보면, 김문생 감독이 얘기한 "이미지만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는 아주, 아주 잘 파악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말하고자 하는 것이 너무도 직선적이면서도 단순했다는 것 뿐인 것이다.

이야기

그런데, 이 영화는 홈페이지 같은 곳에 가봐도 알 수 있듯, 알고보면 심오한 상징 그런거 엄청 많이 가지고 있는 영화다.

영화에서 이상향으로 설정됐다는 '시실'섬은 알고보니 시간을 잃어버린 '時失'섬이었다던가 하는 이두향찰스러운 상징부터, 에코반의 데이터 베이스로 침입하는 패스워드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이었다던가 하는 색즉시공공즉시색공수래공수거스러운 상징까지 말이다. 코오...

또, 가이아Gaia 이론, 조택연 교수의 에코반 설정, 유기체 도시, 토테미즘 등등, 멋져 보이는 용어 같은 건 조또 모리는 본 필자로서는 그저 두려움의 대상일 뿐인 배경이론 그런것도 엄청 많다.

그런데, 이렇게도 심오찬란한 영화가, 어쩌다가 10분만 보면 결론까지 다 상상이 되는 영화가 돼버린 것인가.

그 원인은 단연, 영화가 하고자 하는 '자기만의' 얘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부실한 기초는 화려하고도 매끈한 이미지로도, 각종 상징과 이론으로도 메울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론'을 만들기 전에 '줄거리'를 만들고,

'캐릭터'를 만들기 전에 '인물'을 만들고,

이미지로 이야기 하기 전에 이미지로 할 이야기부터 만들고,

눈을 놀라게 하기 전에 감정을 움직이고,

'매끈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전에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니,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원더풀 데이즈>는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채 소화도 되지 않은채 가지고 들어온 이론이나 상징 같은 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 그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오랫동안 묵히고 소화시켜서 마침내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다시 구성해낸 생각과 상상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바로 <원더풀 데이즈>가, 화려하면서도 공허한, 매끈하면서도 별 감흥없는 이미지가 난무하는, 지루한 영화가 된 가장 큰 이유다.

그건 150억이 넘는 제작비와 7년간의 제작기간으로도 덮을 수 없는 너무나 큰 구멍이었다...

아, 과연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뭐, 나라도 돈 내고 한 번 더 보는 수 밖에. 어쩌겠어...

[ 덧붙여서 ] 거의 커피에 김치 곁들여 먹는것과 다를 거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 많겠지만, <원더풀 데이즈>와 <똥개>는 여러모로 비교할만한 구석이 많다.

하나는 떼돈과 떼시간 들인 애니메이션이고, 하나는 돈도 그리 많이 안들이고 시간도 그리 많이 안들인 영화다.

하나는 쌔끈한 비주얼에 거의 목숨 걸고 있고, 하나는 포스터에서부터 멀쩡한 공인미남 배우 꾸리꾸리하게 분장시켜논 비주얼을 과시하고 있다.

하나는 만들때부터 세계시장 겨냥한듯한 잉그리시 제목이고, 또 하나는 요즘같은 애완견의 시대에는 거의 쓰지도 않는 용어를 제목으로 채택하고 있다.

근데도 비교할만한 구석이 많냐.

많다. 바로 그런 점들이 비교할 구석이다.

근데, <똥개> 얘기는 복날에 올려야 될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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