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은, 일단 포스터의 승리다.

60년대 가족사진 같은 필을 물씬물씬 풍겨주는 품위있는 갈색톤의 사진, 그 정갈하고 절제된 느낌을 받쳐주는 제목의 글자체. 그 위에 보일듯 안보일 듯 박혀있는 카피 "우리집에 놀러오세요" 등의 구성을 보라. 요즘 들어 더더욱 어떻게든 튀어볼려구 아주 난리법석도 아닌 포스터들에 비하면 가히 군계일학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이 포스터의 핵심중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피가 떡칠된 상태의 하얀색 원피스 차림으로 소파에 망가진 인형처럼 널부러진 자세로 앉아있는 두 명의 여류 청소년일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쁘잖어.
게다가 두 명 다... 어헝헝..

...

.. 잠시 안면 도포 타액 제거 시간이 있겠다... 여튼 <장화, 홍련>은, 일본풍의 <아담스 패밀리>같은 이 포스터의 이미지와, <장화, 홍련>이라는, 소시적에는 별루 안 무섭게 읽었지만 따지고보면 되게 섬��한 고전에서 따온 제목, 그리고 김지운 감독이라는 이름의 결합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영화일꺼라는 인상을 풍긴다.

무섭고도 약간 웃긴, 스타일 좋은 일본풍의 공포영화.

실제의 영화도 위 예상과 거의 일치한다.

'약간 웃긴'이라는 대목만 빼고 말이다.

무섭냐, 안무섭냐

일단, 이 영화는 코메디 이런거 절대 없는 영화다.

뭐, 가끔 웃게 되는 대목이 한두번 나오지만, 그야말로 한두번이다. 물론, 다들 가만히 있는데 혼자 놀래갖구 옆사람 귀에서 피흘리도록 비명지르고 난 뒤, 쪽팔려서 베시시 흘리는 웃음의 횟수는 제외다.

여튼, 이 영화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인데다가, 포스터도 <조용한 가족>과 비스무리한 풍이라서 '코믹가족호러' 뭐 이런걸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완전히 작정하고 무서우려고 하는 공포영화다. 물론, 이 '공포영화'란 말을 <나는니가지난여름어쩌구저쩌구> 류의 정육도축형 영화와 혼동하시는 몰지각한 분은 없으리라고 보고..

여튼, 그래서 이 영화가 무섭냐 안 무섭냐. 그거부터 얘기하면..

무섭다. 그것도 상당히.

게다가, 그 필은, 우리가 옛날부터 무서운 얘기할때마다 많이 써먹었던 일본풍 무서운 얘기의 필 그대로다. 그런 무서운 얘기에서 막연하게 느꼈던, 오래된 서양풍 고저택에 걸린 눅눅한 곰팡이 냄새나는 꽃무늬 커튼 때문에 만들어진 퀴퀴한 어둠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그렇다. 이 영화가 듬뿍 함유하고 있는 이런 일본풍 무서운 얘기필은, 우리가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공포의 주파수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그 무서움을 증폭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 '일본풍'이라 함은, <링>이나 <소용돌이> 같은 흰색, 검정색 위주의 오리지날 일본풍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이 영화는 60년대풍의 낡고 칙칙한 화려함으로 '우리식의 일본풍'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거이 뭔소리냐.

대표적으로, 이 영화의 다섯번째 주연이라고 할 수 있는 70년대풍의 2층 목조 양옥집을 보자.

이 집은 벽지며 커튼이며 창틀이며 거울이며 할 것 없이 어디에나 과도하게 장식적이고 과도하게 화려한 꽃무늬 패턴들로 도배돼 있다. 그리고, 그 낡은 집에 배어있는 어두운 고동색이 그 꽃무늬를 다시 한 번 도배하고 있다. 그렇게 도배된 여자애의 다락방 한구석에서는, 머리 큰 일본식 예쁜이 인형들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쌓여있다.

이런 풍경을 배경으로, 갑자기 바이올린의 불협화음 소리가 깔려오면서, 익사체에 엉켜있는 미역같은 검정 머리를 온 얼굴에 뒤덮고, 부러져 있는 듯 목이 꺾여있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귀신이 질질 바닥을 기다가, 갑자기 나한테 다가온다고 생각을 해봐라.

이런 장면은 <전설의 고향>이래로 각종 영화에서 주구장창 봐 왔지만, 그래도 또 무서운걸 어쩌란 말인가. 정말이지 이런 장면 앞에서는 <링>의 사망자들처럼 '이렇게 무서우느니 난 차라리 죽어버릴란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여튼 이 영화에서는, 그런식의, 무서워서 이불이라도 뒤집어쓰고 싶은 장면이나 설정들이 속출하니, 다른건 다 제끼고 제대로 한 번 작정하고 무서워보고 싶은 분들은 목표한 바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

근데, 이러한 무서운 필은,

첫번째는, 위에서 얘기한 미술과 소품
두번째는, 그 보색대비 화려한 색과 고동색의 어두운 그림자를,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 만빵으로 잡아낸 촬영
세번째는, 남용되지 않고 적재적소에 들어간 효과음과 음악

등으로 만들어진, 꽤나 공들인 것들이다.

각각의 요소가 다들 나름대로의 훌륭하다만, 소품의 예를 들어 얘기해보면, 초반부, 아빠(김갑수)가 면도하는게 클로우즈업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의 면도기는 손잡이 돌려서 뚜껑열고 도루코 면도날 넣는 옛날 면도기다. 만약 여기서, 버튼 하나 잘못 누르면 삼단변신해서 날아갈 것 같은 요즘 면도기 같은게 나왔으면 얼마나 홀라당 깼겠는가. 면도날이라는 존재에서 오는 위태위태한 느낌으로 인해 받쳐지는 영화의 분위기는 빼고서라도 말이다.

뭐, 이런거야 기본이라고 하면 기본이겠지만, 그런거 완전 개무시하는 영화가 지천에 널린 요즘에는, 한 번 쓱 지나가는 소품마저도 일관된 분위기로 선택하는 정성이 그렇게 흔해 터진 건 아니다.

또, 효과음과 이병우가 맡았다는 음악 또한 꽤 강력한 역할을 한다. 그 중 효과음을 포함한 이 영화의 사운드는, 공포영화 사운드계에 신기원을 열어제낀 기발참 같은거야 전혀 없지만, 어쨌든 상당히 완급조절이 잘 돼 있다.

특히 언제튀어나올까언제튀어나올까..하는, 가슴살 간장조림을 당하는듯한 긴장을 만들어내는 대목에서는 아주 발군의 기량을 보여준다. 물론, 당연히도, 각오하고 있어도 막상 나오면 깜짝 놀라게되는 '쾅!' 소리도 준비돼 있고.

또, 위에 언급된 요소 외에도, 두 자매의 그 청순무구한 필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영화가 그들로부터 의도적으로 끌어내고 있는 야시시한 분위기 또한 이 영화의 공포필을 더욱 더 강력하게 만든다. 원래 공포영화란, 좀 야시시한 필이 가미 되어야 제맛이 아니던가.

어쨌든, 영화시작 후 1시간 20분 정도는, 앞 뒤 없이 기냥 무서운 얘기 디립따 듣는 기분이다.

게다가, 한국영화에서는 그닥 흔하지 않은 잘 짜여진 그림에, 이쁜 여류 청소년 두명이 영화 끝날때까지 줄창 나오니 그 아니 즐거울쏘냐..

어헝헝...

그러나..

하지만 그렇게 즐기는 와중에, 영화가 1시간 20분 쯤 지날때쯤 되면, 슬슬 이런 궁금증 또는 걱정 비슷한게 들기 시작한다.

'근데 도대체 마무리를 어떻게 지을려구 저런다냐..'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적이 없는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후반부, 아빠가 큰딸 수미에게 결정적인 대사 한 방을 치는 그 대목부터는, 모든걸 포기한 필로다가 완전 혼란의 도가니탕 속으로 빠지고야 만다.

얘가 쟤고, 쟤가 얘고, 걔는 거기 있는데, 또 걔가 저기있고, 또 저기있는 줄 알았더니 여기에도 있고, 아까 지나간 장면이 또 나오는데, 아까 그 장면 같지는 않고 등등등.. 아주 난리가 난다.

하지만, 이게 알고보면 컨셉이랜다.

따라서 영화 후반, 이거이 뭔가 좀 헷갈리고 이상타.. 싶은 생각이 들어도 굳이 이해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느긋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시기 바란다.

이 그림을 잘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컨셉이다.

어쨌든, 혼란스러운 것도 혼란스러운 거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컨셉이라는거 그닥 기발차지도 않고, 그걸 보여주는 방법 또한 전혀 설득력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닥 새롭지도 않고.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럴꺼였으면 차라리 어설프게 뭔가 기발찬 얘기같은거 할려구 노력하지 않고, 또한 평론가들의 띄워줌 같은거 받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깔끔하게 떨어지도록 만들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영화 중반부까지의 이야기나 비쥬얼만으로도, 재래식 언론들은 띄워줄만한 부분은 다 띄워줬을꺼고, 잡지들은 평론가들 두세명 모아놓고 찬반논쟁 같은거 해서 실어 줬을꺼고, 평론가들은 프로이트, 융, 라깡 등등등 웬만한 있어보이는 사람들 이론은 다 갖다붙여감서 자기도 뭔소린지 잘 모르는 용어 써가며 폼나는 분석을 해줬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이 영화는, 뭔가 깊이 있어지려고 파고들어가다가, 너무 깊게 들어간 나머지 자기가 판 구덩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수습못할 컨셉 을 무리하게 끌고 갔다는 얘기다. 또는 그 컨셉을 표현하는 방법을 완전히 잘못 택했거나.

어쨌거나, 주최즉에게만 이해되는, 그러나 관객은 하해와 같은 포용력을 가지고 봐야 이해해줄 수 있는 기법 아닌 기법으로, '컨셉이 이러한 거니까, 이렇게 이해해주세요'라고 우긴다면 그 컨셉이란 건 없느니만 못하다. 중요한 건, 컨셉 그 자체가 아니고, 그걸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방법이 아니던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를 보는 도중 그걸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발버둥치는, 도탄에 빠진 관객은 대체 어쩌란 말이더냐. 어설프게 '기발' '깊이' '반전' 뭐 이런거 해보려다 관객 설득도 못 시키고, 죽도 밥도 안된 <텔 미 썸딩>이 남긴 교훈을 벌써 망각해버렸단 말이던가..

무슨 공포영화 비슷한거만 나왔다하면, 개나소나 눈 디비지는 엄청난 반전 이런거 할려구 발버둥들을 치는 작금의 공포 영화계의 상황..

이런 상황에서는, 막판 반전 따위는 초개와 같이 버리고 그냥 단순하고 깔끔하게 한가지 얘기에만 충실하는 저돌적인 영화가 훨씬 더 신기하고 기발차 보인다. 그리고, 그게 훨씬 더 반전스럽다. 이제 그노무 반전도 지겹단 말이다.

이런걸 모를 리 없는 김지운 감독이 도대체 왜 이런 실수를 했는지 알 수 없음인거야말로, <장화, 홍련>이 남긴 최대의 미스테리라면 미스테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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