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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ook
한동원의 글 수첩

감은 왜 떫은 것인가

2004 2. 19




"한 번 시작하면 결코 멈춰서는 안될 것들이 있다."

- Paul Reed <Something's got a hold> 중에서




은 왜 떫은 것인가?


감 마음이다.


뭐 이렇게 답하신다면, 할 말 없음이다만...

어쨌든 이것이 작년 가을께에 감을 먹다가 필자의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의문이다.

이 의문은 마치 배고픈 갓난애 엄마한테 매달리듯 필자의 머리속에 들러붙어 버리더니, 급기야는 하늘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의문부호로 자라나버리기에 이르렀다.

나는 감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많이 먹는 편도 아니니, 이것은 심히 억울한 일이다. 물론, 감의 입장에서도 억울하긴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쩌겠어. 궁금한데.

그리하여, 평소 게으르기로 치면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해도 오로지 메달의 색깔만이 문제일 필자가, 최근에 독한 마음을 먹고 백방으로 심도 깊은 탐구생활을 수행하여 그 전모를 파헤쳐 내기에 이르렀으니, 내가봐도 그 아니 스스로가 대견할쏜가..

그렇게 알아낸 감이 떫은 이유에 대하여, 지금부터 상세히 읊조려보도록 하겠다. 약간의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일단, 얘기를 '떫은 맛'이라고 하는 맛의 정체를 밝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떫은 맛'이란 다름아닌, 입안의 수분이 미세하게 흡수될 때 혀가 느끼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떫은 맛'이라는 맛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그냥 살짝 물기가 마르는 것 같은 느낌이 바로 '떫은 맛'의 정체라는 것이다.

그 '떫은 맛'을 내는 주성분은 '실리카데속시콜린산'이라는 물질로서, 이 물질은 익기 시작한 감의 떫은 부분(즉 껍질과 꼭지 그리고 씨)에 집중적으로 생성된다.

그 이유는 감이 완전히 익어서 충분히 싹을 틔울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전에 새나 벌레에 의해 씨가 손상당하거나 열매가 미리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우리가 모성애라고 부르는 것의 뿌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인 것 같다. 어쨌든,

흔히 우리가 감을 많이 먹으면 쉽게 변비 걸린다고 얘기를 하는데, 그 원인이 바로 이 '실리카데속시콜린산' 성분이 장내의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학적으로 근거 있는 얘기니, 변비 심하신 분들은 특히 조심하시는 게 좋겠다.

그런데,

1964년, 주로 화학비료를 만들던 영국의 한 화학 회사의 연구원이 감의 이러한 '떫음'에 일찌감치 주목하고, 순전히 개인적인 관심으로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 성분을 분리 추출해내는 데 성공하게 된다.

그 소식은 순식간에 회사 내로 퍼졌고, 상업적 감각이 매우 탁월했던 그 회사의 사장은 이 성분을 응축시켜서 제습제로 만들어야겠다는, 실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할 만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그리하여 그 회사의 경영진과 연구진들은 사운을 걸고 비밀리에 '실리카데속시콜린산' 성분의 인공 합성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1967년, 마침내 연구진은 최초로 '실리카데속시콜린산'을 인공적으로 합성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성분, 아니 제품을 '실리카겔'이라고 명명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포장 김이나 과자 봉지 등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제습제 '실리카겔'의 탄생 배경인 것이다.

그렇다. 모든 것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감의 '떫음'에 주목하고 그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 한 연구원의 호기심과 열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3년여의 시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낸 성과인 제습제 실리카겔을 담은 첫 봉투가 공장 라인을 타고 마침내 탄생되기에 이르고, 그 과정을 지켜보던 회사의 사장은 감격에 젖어 봉투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어넣는다. '지금까지의 얘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싸그리몽창 필자가 지어낸 구라였다'라는 문구를.

실은 '팍팍한 사실보다는 아름다운 구라가 훨씬 더 나을 때도 있다'를 그 주제로 삼고 있는 <빅 피쉬>가 남긴 감흥이 은근히 오래 남아, 쓸데도 없는 구라를 장타로 읊조리게 되었다.

화나셨다면 정말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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