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튜브>에 대해서 뭔가 얘기할려치면, 안쓰러움이 눈앞을 가린다.

캐스팅부터 투자, 개봉까지 머리털 빠지게 고생을 한데다가 우여곡절이 한 가마니 분량으로 있었다는 제작진과 출연진의 호소를 앞에 두고,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뭔가 꺼낸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뭐, 영화란게 '체험 삶의 현장'도 아닌데, 제작진 출연진 고생했다구 재밌어진다던가 입장료가 안아까와지는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사람들도 설마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겠냐..'하는 측은지심이 들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만들었는데 어떡할꺼야. 게다가, 언론 플레이부터 대문짝 광고까지 때리는 이 상황에서 무고한 피해자가 속출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니던가.

그래서 오늘은, 나름대로 이 영화의 진실과 진상을 함축적으로 은유하고 있는 이 영화의 신문 광고를 가지고 얘기를 해보련다. 사실, 영화만 가지고 얘기할려고 하면 별루 할 얘기가 없다. 뭐 내용이나 그런거 비슷한게 있어야 얘기를 해도 할꺼아냐..

우선, 오늘의 재료로 선정된 5월 31일자 신문에 실린 광고를 보자.

오늘의 재료

나름대로 상당히 갑빠..이런거 할라구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김석훈의 모습은 나쁘지 않다. 아니, 영화에 비하면 정말 훌륭하다. 이건, 완전 훌륭한거다.

어쨌든, 그 김석훈의 위에 각종 카피들이 붙어있는데, 이건 어차피 주최측이 붙인거니까 별루 얘기할 거시기가 못된다고 사료된다. 뭐 이 영화 존나 재밌어요 괜찮아요 죽여요 그러겠지, 우리 영화 완전 �F덩어리예요 보지마세요 이러겠는가.

해서 필자는, 저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는 "한국 액션 영화의 확실한 업그레이드!!!"라는 헤드카피 바로 밑에, 숟가락뒤에 붙은 밥풀처럼 붙어있는, 일반 관객들의 반응인듯한 냄새를 풍기기위한 인용문스러운 글들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이 부분

뭐 요즘 다들 그러듯, 이 신문광고에 역시 각종 정체불명의 게시판에서 퍼온듯한 정체불명의 문구들이 정체불명의 영문 아이디를 뒤에 달고 인용돼 있다. 물론, 그게 진짜 인용인지 아닌지 역시 정체불명이다.

하지만, 주최측이 창작해낸거든, 작전세력이 올린 게시물에서 인용해온거든, 제작진 가족들이 쓴거든, 주최측 알바들이 쓴거든, 진짜 관객이 쓴거든 그런건 알 바 아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 이 부분이야말로 <튜브>의 진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표현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진실에 가까운 문구는 바로 이거다.

그렇다. <튜브>는 <매트릭스2>에 비견될 수 있는 영화다. <매트릭스2>에 3大 압권이 존재했듯, <튜브> 또한 3大 압권을 준비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튜브>의 3大 압권은 <매트릭스>의 그것보다 훨씬 강력한 파워를 보여주고 있어, 관객들을 민망함과 쪽팔림의 도가니탕으로 빠뜨리기에 손색이 없다. 즉, <튜브>는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만든 장면도 아닌데, 보는것 만으로도 쪽팔려서 이불이라도 뒤집어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함으로써, 제작진과의 감정적 교류를 꾀한 초압권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중 첫번째 압권은, 싸워도 싸워도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 無가르마 머리와 손 벨듯 각을 잡은 와이샤쓰 깃을 넌지시 가다듬으며 상방 12도 각도로 도끼눈을 떠주던 나쁜놈 역의 박상민의 것이었다.

지하철을 점거한 그는, 어찌저찌하여 그가 있는곳까지 간 김석훈과 일대일 다이다이로 맞딱뜨리게 되는데, 여기서 당연히 둘은 상호간에 동시에 달겨들며 주먹을 날려주는 완타치 맞짱을 시행하게 된다. 즉, 김석훈과 박상민 두 사람은 소리를 지르면서 주먹을 들고 서로에게 달겨드는데, 둘의 충돌 직후 갑자기 침묵이 흐르고, 박상민의 모습이 정면으로 보여진다.

그때, 관객이 맞딱뜨리게 되는 박상민의 모습은, 오른주먹을 정면으로 곧게 내밀면서 어깨넓이로 발을 벌려 기마자세를 유지하는, 빙판에 착륙하는 슈퍼맨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자세는, 약 3초간 부동자세로 유지되어 관객의 뇌리에 결코 지울 수 없는 강렬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아.. 필자는 아직도 그 오른주먹 뒤에서 강렬하게 이글거리던 그의 빛나는 도끼눈을 잊을 수 없다. 그 장면을 웃지도 않고 연기해낸 박상민의 연기혼은 과연 놀라운 것이었다.

두번째 압권은 물론 김석훈의 것이다.

또 어찌저찌하여 배두나가 잡혀있는 박상민의 객차에 들어가게 된 김석훈은 또 그와 싸우는데, 결국 그는 달리는 전차의 깨진 창문에 대롱대롱 간신히 매달리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당연히 박상민은, 그 손을 사뿐히즈려밟기 시작한다.

그런 박상민을 지켜보던 배두나가 갑자기 박상민의 뒷통수를 가격하고, 열받은 박상민은 배두나를 강력히 응징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 때, 창문에 매달리기도 바빠 죽을것 같은 김석훈은, 안이 보이지도 않는데 어찌 알았는지 배두나가 응징당하고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이와 동시에 그는 양 발 가지런히 모아, 매달려 있던 창문의 옆 창문을 깨고 객차안으로 날아들어가는 아크로바틱 공중부양 옆차기를 보여준다. 완전, 평양 교예단이 따로 없다.

차 안에서 열심히 응징작업 중이던 박상민은 순간적으로, 난데없이 뛰들어온 그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아마도 관객들의 표정 또한 전원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필자 역시 필자의 두 눈을 의심했더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번째 압권은 영화의 막판에 이르러 이들 둘의 합작으로 만들어진다.

다시 한 번 객차 안에서 둘이 맞딱뜨리게 된 김석훈과 박상민. 이미 아까 완타치 맞짱을 시행한 뒤라, 모포깔고 맞고라도 치치 않으면 뭔가 할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이 위기의 대목에서, 영화는 마지막 압권을 날린다. 그것도 액션 따위가 아니라, 대사로 말이다.

(아래 대사는 반드시 신성일 아저씨 더빙 목소리 필로 읽어주시라)

먼저 박상민의 화두가 날려진다.

"명이 길구나.."

그리고 이어지는 김석훈의 화답.

"약속이 있거든..."

오오.. <다찌마와리>를 방불케하는 주옥같은 60년대 필이 2001년의 멀쩡한 극장가에서 부활한 이 순간. 필자는 싸워도 싸워도 흐트러지지 않는 박상민의 무가르마가, 다찌마와 리의 8:2 가르마에 기원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눈치채게 된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어서, 광고 중 또다른 부분을 보도록 하자.

"영화 초반의 총격신은 정말" 뒤의 "..."에 주목해주시기 바란다. "정말" 뒤에 붙일 만한 수많은 짧은 단어들, 즉 "압권입니다" "짱이예요" "죽여요" "끝나요" 등등을 쓰지 않은채 굳이 "..."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그것은 바로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음'이라는 내면세계를, 문장부호적 직유를 이용하여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필자 또한, 김포공항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 직접 공항에서 찍었다는 이 총격전 앞에서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음이었다.

그 이유는 총이 짝퉁 같아서도 아니고, 총질이 짝퉁 같아서도 아니고, 화면이 정신없지 않지 않아서도 아니다. 이 영화 감독, <쉬리>의 조감독 출신답게 <쉬리> 필의 멀미나는 핸드헬드로 이 총격전 장면을 찍었는데,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 총격전 다음인거다.

위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 총격전이 끝난뒤, 경찰을 이미 몇십명 죽인 총격범 박상민과 그의 부하들은, 썬그라스 끼고 갖은 후까시를 다 잡아가면서 멀쩡하게 총들고 걸어간다. 그 화면 그대로 양복광고로 만들어도 좋을 정도다.

그리고, 그러구 있는 걔네들한테, 기동 타격대스러운 사람들은 그냥 총만 겨누고 있는다.

필자는 순간적으로, '앗, 저 기동 타격대도 같은 편이었나? 이거 <다이하드 2>에서 힌트를 얻을 건가?'하는 생각마저 했다. 그러나 결국, 쟤들은 그냥 저렇게 총 겨누면서 움찔거리다가, 얼마 안있어 또 나쁜놈의 총을 맞는다.

갑자기 난데없이 벌건 대낮 공항에서 총격전이 시작된 이유도 잘 알 수 없었던 필자는, 이 대목에 와서는 완전히 아노미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 아노미 상태는 물론, 이 영화의 정체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영화 시작 후 5분도 안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나타난 증상이었다.

결국 필자는,

세우면 당장에 홀라당 다 폭발할꺼 같던 그 전철이
그냥, 사령실에 의해서 세워지고
물론 절대 안터지고
그렇게 얌전하게 세워진 전철에 기동타격대가 선로따라 다가가고
걔들이 객차 문을 버럭 열어젖히면
양복입은 박상민이 문 한가운데 서서 차렷 자세로 총질하고
그 총질에 최정예라고 하던 타격대원들이 한큐에 떼죽음을 당하는 영화 중반..

이 부분에 이르러서야, 초반에 영화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던 자신이 얼마나 조또빙신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글이 길어졌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 이렇게 시간 들여서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도 시간 아까운 일이다.

해서, 기승전결이고 뭐고, 그냥 몇가지로 정리하고 마무리 하련다.

1. 처음부터 '그냥 재밌는 영화'만드는게 목표였다던데, 재미전에 기본적으로 얘기부터 얘기같이 만들고 시작하기 바란다. 재미같은건 많지 않아도 좋으니까 최소한의 얘기는 되게 만들란 말이다.

2. 배두나는 영화 끝까지 영문을 절대 알 수 없는 클림트 그림이 그려진 기타 케이스를 메고 다니던데, 그걸 메고 줄창 맞고 울고 뛰고 하던 배두나가 불쌍하다.

3. 그렇게도 조빠지게 찍었다는, 김석훈이 열차 밑에 매달려서 다음 객차로 가는 장면은, 옆 객차 구경하기도 전에 나쁜놈한테 들켜서 그냥 돌아와버리는걸로 끝난다. 정말이다. 그러구 그냥 끝이다. 알고보면 김석훈도 불쌍하다.

4. 심지어는 이 영화 본다구 두시간이나 넘는 시간을 버린 나도 불쌍하다. 그 시간에 오락실에서 오락이나 한 판 할 껄.

7000원이면 오락이 몇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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