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몇몇 장면의 각종 정황 등등을 소상히 밝히고 있으므로, 그런거 완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읽지 마시기 바람]

그것은 인근의 팝콘 봉다리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완전 제압한 총소리와 폭발음과 차 뒤집어지는 소리의 틈사이을 조용히 비집고 들어와, 관객의 가수면 상태를 파편조각으로 산산이 흩날리게 한다..

그것은 <매트릭스 2> 전체의 존재를 규정할 강도의 강렬한 자극을 관객들의 뇌파에 남김으로써, 어느새 <매트릭스 2>가 남긴 유일한 흔적으로 기억된다..

그것은 1편에 이어 여전히 건재하던 <매트릭스> 특유의 횡설수설을 압도하며, 진지한장면과 본의아닌코메디와 고의적코메디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한 마리 나비처럼 희롱함으로써 관객들을 진정한 아노미의 세계로 인도한다..

우리는 이것을 <매트릭스 2> 3大 압권이라 부른다.

첫번째 압권

아, 그것은 진정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물론 우리는, 이 첫번째 충격이 강림하기 전, <혹성탈출>, <티라노의 발톱> 또는 <배틀필드>의 정취를 물씬물씬 풍겨주던 자이온 집단땐스 장면에서부터 이 영화를 관람하는 여정이 우리의 기대와 같지만은 않을 것임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날린 충격은 이 정도의 예감만으로는 대비될 수 없는 것이었다..

첫번째 압권은 <용가리>의 여주인공과 상당히 흡사한 여인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었다.

매트릭스의 비밀을 푸는데 핵심적인 사람이라는‘키 메이커’를 찾아 헤메던 네오, 모피어스, 트리니티는 어찌저지이러저러이러쿵저러쿵어쩌구저쩌구한 과정을 통해서 문제의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거물급 느끼맨의 풍모를 보여주는 남편과 함께 데친 오징어스러운 재질의 흰색 원피스를 입은채, 오징어살 만큼이나 우아한 손가락으로 말없이 와인을 들고 있다.

한마디면 될 껄갖구 상당히 '김, 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적인 횡설수설을 읊조리며, 결국 키 메이커 있는데를 안 가르쳐준다는 얘기를 하는 그 여인의 남편.

그러나, 얘기가 끝난 뒤, 화장실에서 네오 일행을 따로 만난 그 오징어 원피스의 여인은 자기 또한 키 메이커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얘기한다. 허리춤의 오징어 지느러미형 장식을 우아하게 달랑거리면서.

당연히 네오 일행은 키 메이커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하고, 그 여인 역시 당연히 댓가를 요구한다.

그런데.. 아..

우리는 바로 대목에서 <매트릭스>가 감춰뒀던, 그 어떤 재래식 언론도 언급한 바 없고, 심지어는 웬만하면 싸그리몽창 다 보여주기를 정책기조로 삼고 있는 TV 영화정보 프로들마저도 공개한 바 없는 장면과 조우하게 된다. 아, 아직도 뒷목을 뻐근하게 만드는 그 충격.. 그것은 바로,

그녀가 요구했던 댓가란 다름아닌,

뽀뽀 한 번 제대로 해주기

였던 것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 뽀뽀(또는 키스)를 말하는거다.

게다가 네오에게 ‘뽀뽀 한 번 제대로 해주면 얘기해주지’라고 나지막히 읊조리는 그 오징어 원피스 여인을 향해, 0.2초의 간격도 용납지 않으며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는 기세로 냅다 총을 빼서 겨눈 트리니티의 반응 또한 충격의 여파를 지속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뽀뽀 한 번 제대로 해주면 안잡아먹지’

여기에서부터 관객들은 ‘무엇을 상상하던지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카피의 진정한 의미를 눈치채기 시작한다.

두 번째 압권

그러나, 위의 충격은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했던 것. <매트릭스 2>는 마침내 자신이 취하고 있는 3부작 구조를 그대로 도입하여, 관객에게 날려줄 압권 3부작을 심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3부작 중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이 두 번째 압권이다.

결국,‘그걸 뽀뽀라구 하냐. 시방, 너 장난하냐. 제대로 안하냐.’등의 집요한 요구를 통해 드디어 네오에게 찐한 뽀뽀 한 번을 관철시킨 오징어 원피스 여인은, 약속대로 네오 일행을 키 메이커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 비밀의 문 앞에서, 열받은 오징어 여인의 남편, 그리고 부하들과 네오 일행은 또다시 격투를 벌이게 된다.

사방에 창이며 방패며 칼이며 꽂혀있는 유럽 귀족 저택 로비 비시무리한 곳을 배경으로 벌이는, 이제는 그닥 신기하지도 않고 신선하지도 않은 그 격투씬을 지탱해주는 것은, 그랬다. 바로 그 ‘키 메이커’에 대한 궁금증이었던 것이다.

과연 어떻게 생긴 넘이길래 저렇게 뜸을 들이고 안보여주나..하는 일말의 궁금증 말이다.

그리고 그 뜸들임으로 인해 촉발된 궁금증이야말로 두 번째 압권을 향한 가장 핵심적인 키였던 것이다.

결국, 그 격투씬의 결과로 네오 일행은 키 메이커 있는 곳으로 통하는 비밀문을 열어제끼게 되고, 그 안에 있는 좁은 복도를 달려, 그 막다른 곳에 있는 그 문제의 키 메이커의 방 문을 또 한 번 열어제끼는데, 그 순간 관객들이 자신의 눈을 의심할만큼의 충격과 경악속에 맞딱뜨린 것은 다름아닌..

진짜 열쇠 아저씨였던 것이다.

그렇다. 즉 동네 열쇠가게에서 작업용 앞치마 두르고 열쇠 깎아주는 그런 그냥 열쇠 아저씨말이다.

정말이다. 그냥 ‘열쇠 아저씨’하면 0.1초 안에 떠오르는 그 그림 그대로다.

키 메이커..

그 어떤 비유도 은유도 직유도 환유도 허용하지 않는 그의 완전정직신용본위적 자태가 던진 충격과 그 경악의 도가니탕 한가운데에서 몸부림치는 관객을 앞에 두고, 그는 태연자약하게 열쇠 하나 꺼내든 후 소형 야스리로 그것을 가볍게 한 번 다듬어줌으로써, ‘키 메이커’가 말 그대로의 동네 열쇠 아저씨였다는 그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끔 확고부동의 종지부를 찍는다.

바로 이 대목부터 관객들은, 매트릭스가 던지는 진정한 혼돈의 화두를 접하게 된다.

즉, 관객들은 최선을 다한 진지한 영화와 의도적인 코메디 영화와 본의아닌 코메디 영화 사이의 경계가 일거에 무너지면서 오는 아노미 상태에 완전히 노출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압권

놀랍게도 그 두 번째 압권은 관객들을 혼돈의 도가니탕, 그 깊은 심연의 심장부로 끌고가기 위한 입구였을 뿐이었다.

이 영화가 남겨놓은 마지막 압권은, 영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화두를 던짐으로써, 그것을 응시하고 있는 관객들마저도 관객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돈의 한가운데로 인도한다.

그 혼돈은 이미 영화의 초반부, 네오가 짧은 시간동안 고속 공중부양을 보여줬을때부터 이미 그 시작을 예고하고 있었다. 네오의 공중부양과 동시에 지나가는 말처럼 깔리는 팀 동료의 대사 “(네오는) 슈퍼맨 놀이 하러갔어”는, 실은, <매트릭스 2>의 세 번째 충격에 대한 결정적인 암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관객들은 차마 그 뒤에 숨어있는 중대한 의미를 간파할 수 없었다. 그 초반부에서 관객들은 자신의 상상력의 한계 안에서만 이 영화를 관람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마지막 부분으로 치달을 때, 이미 두 번의 압권과 그 외의 자잘한 충격들을 겪어내며 이 영화속에서는 그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온몸으로 느끼고 있던 관객들은, 네오가 다시금 위기에 빠진 트리니티를 구하기 위해 고속 공중부양을 시작함과 동시에 세 번째 충격의 도래를 어렴풋이 예감한다..

그리고 그 예감은 현실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권의 강도는 그 예감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각종 재래식 언론들에 의해 고속도로 하나를 통째로 건설해서 찍었음이 두루 유포됨으로써 관객들의 기대의 한 축을 이루었던 고속도로 추격/결투 장면이, 결국 돈 쳐발랐다는 사실 외에는 그닥 주목할 꺼리가 없음을 노출함으로써 관객들을 가수면 상태에 빠뜨리기 직전, 그 위기의 시점에서 구세주 네오는 돌아온다. 예의 그 고속 공중부양술을 통해, 폭파되는 트럭에서 모피어스와 키 메이커를 나꿔챔으로써 말이다.

저 장면 어디에서 많이 본듯하다는 생각을 미처 하기도 전에, 네오는 마침내 위기에 빠진 트리니티를 구하기 위한 최후의 고속 공중부양을 시작한다.

애인을 구하러 가는 그 공중부양의 강력함은 물론 이전의 공중부양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이었던 바, 날아가는 네오 뒤로는 차가 뒤집어지고 건물 유리창이 깨지고 나무가 뽑히며 그의 필꽂힘을 형상화 해준다.

그리고, 트리니티의 위기의 절정을 직감한 네오..

애인의 위기 앞에서 마침내 그는,

과거 20여년전 슈퍼맨 이래 그 어떤 캐릭터도 제대로 계승해내지 못했던 오른 주먹 앞으로 쭉 뻗으며 날아가는 정통 슈퍼맨 자세를 그대로 재현해내며 급가속을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세 번째 압권과 충격을 안긴다.

당시의 그 충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필자는, 주위에서 ‘억’하는 단말마의 신음소리와 함께 한손으로 뒷목을 감싸안으며 쓰러지는 관객이 발생하지 않았음을 천운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자신이 보고 있는 영화가 <매트릭스 2>인지 <돌아온 슈퍼맨>인지 여부에 대한 혼돈의 화두를 던짐으로써, <매트릭스 2> 관객으로서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총체적인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매트릭스 2> 최대의 반전이라 할 것이다.

재래식 언론에서 초당적으로 협심하여 읊조린 "고속도로 하나를 통째로 건설해서 찍었다" 등등의 빨아주기와 함께 가장 자주 읊조렸던 "감독들이 키아누 리브스에게 보들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을 읽게 했다“는 등의 얘기가 암시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슈퍼맨>과 <매트릭스> 사이에서 던지는 영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보도자료 각색해서 기사쓰기‘ 같은 재래식 언론의 기사작법 같은것이 절대 아닌, '자진해서 심오하게 빨아주기'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스크린을 가득 메우며 관객들을 향해 정면으로 뻗어지던 키아누의 그 거대한 오른 주먹이 던진 그 카오스적 존재론은, 과연 매트릭스가 보유하고 있는 정신세계가 그 얼마나 심원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대목이었다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혼돈의 정신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우 뿐만이 아니라 관객들마저도 “시뮬라시옹”과 노자 장자를 통독해야만 할지도 모르리요..

이렇듯, 관객들로 하여금 가수면 상태와 충격적 혼돈상태 사이를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면서, 성삼위일체적 3대 압권을 안겨주는 <매트릭스 2>.

필자는 올 겨울, 이 시리즈가 마지막으로 보여줄,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을 보게될 각종 충격과 그것이 암시하고 있는, 완전 코믹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살벌나게 심원한 정신세계를 접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 그 자체보다 특수효과가 어떻게 만들어졌네, 읊조리는 철학이 어떻네 하며 혹세무민하는 재래식 언론들의 작태가 어떻게 업그레이드 될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 또한 필자를 흥분의 도가니탕으로 몰아넣고 있다.

올 겨울, <매트릭스 레볼루션>의 개봉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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