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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ook
한동원의 글 수첩


빌리 맥에게 배운다 - 크리스마스의 道

2003 12. 25
pm12:00




근 개봉한 영화 중에서 가장 멋졌던 캐릭터는 누구인가. 물론 <반지의 제왕>의 캐릭터들을 제외하고 말이지.

그렇다면 필자는 단연, <러브 액추얼리>의 늙은이 락커 '빌리 맥'을 꼽아버리겠다.


빌리 맥

각종 여인들과 정체불명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빌리 맥 (중앙)


최소한 20년 동안은 하루 20분씩 꾸준히 뽄드를 분 듯한 그 게심치레한 눈빛을 흐라려가며, 청자 다섯보루는 핀 듯한 목소리로, 멀쩡한 연말결산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어린이 여러분, 마약은 절대로 사지 마세요..

....................

.....락 스타가 되면 꽁짜로 얻을 수 있어요."


라는 방송사고를 치는 대목은, 근래 들어 본 장면 중 가장 웃기면서도 골때리면서도 귀여운 장면이었다 하겠다. 과연, 저 대사 하나만으로도 빌리 맥은 큰형님이라는 작위로 불리우기에 일말의 부족함도 없었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골때림의 와중에서도 빌리 맥은 큰형님적 캐릭터답게 훌륭한 컨셉을 보여주고야 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어떤 것이었던가. 보자.

마침내, 드디어, 블러Blur 짝퉁 '블루Blue'를 누르고 크리스마스 이브 차트에서 넘버원을 기록한 빌리 맥.

그는,

각종 유명인사들과 미녀들이 득시글거리는 파티 죄다 내팽개치고,

허구헌날 주리장창 틈만 나고 찬스만 보였다 하면 뚱땡이니 돼지니 추남이니 몬쉥겼니 하는 복합종합구박을, 주로 방송을 통해 전국적 레벨로 해대던,

그의 오랜 친구 겸 매니저의 집을 찾아갔던 것이다.

혼자 비디오를 보면서 술을 마시던 그 매니저 앞에 떡하니 나타남으로써 감동 한 번 제대로 먹인 빌리 맥 큰형님. 가금류 대변 같은 감동의 눈물을 흘려 마지않던 그 매니저에게 빌리 맥은, 예의 그 희뿌연 눈빛을 흐라리며 한 마디를 날린다.


"자, 이제 둘이서 뽀르노나 보면서 술이나 왕창 마셔보자구."


코오....

이런 얘길 하면 대부분의 분들은 발끈하시겠지만, 필자는 사실 이 대사가 <러브 액추얼리>의 가장 핵심적 대사였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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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는 항상, 오늘 뭐해? 라는 질문을 하고, 또 받는다.

하지만, 필자는 이 질문이 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오늘 누구랑 보내냐?

짱깨집에서 짬뽕 국물을 하나를 시켜놓고 전기장판 위에 앉아 빼갈을 마셔감서 스물두 번째 <벤허>나 보고 있어도, 그저 좋은 사람과 함께 그러고 있는 거라면 뭐가 문제이겠냔 말이다. 그게 남자건 여자건, 거기가 집이건 홍대앞이건 말이지.

바로 이것이야말로, 모세도, 벤허도, 교황 바오로 2세도, 매컬리 컬킨도, 브루스 윌리스도 알려주지 않았던,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道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道는 비단 크리스마스에만 적용되는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해서 필자는, 크리스마스 다 지나간 이 시간에 이런 뒷북성 글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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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여러분,

올해도 메리 크리스마스이셨기를.


:: Billy Mack ::
<Christmas is all a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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