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리뷰]
新 고소미
지난 여름의 <키위 아작> 리뷰에 이은, 오랜만의 식품리뷰..
2003 12.4
일단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과자계를 개괄하여 보자. 언제나처럼.
과자계는 크게 '봉다리류'와 '곽류'라는 양대 장르로 나눌 수 있다.
'봉다리류'란, 말 그대로 봉다리에 포장되어 있는 과자를 말하는데, 이들은 다시 '공기포장 봉다리류'와 '그냥 비니루 봉다리류'의 하위 장르로 세분화될 수 있다.
현재 봉다리류의 약 73% 이상을 차지한다고 학계에 알려져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는 공기포장 봉다리류는 사실, 그냥 비니루 봉다리류에 비하여 그리 오래지 않은 역사를 가진 장르이다.
그러나, 이 장르는 과자의 원형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다는 공식적인 이유 이외에도, 웬지 양이 많아 보이기도 함과 동시에, 양을 쫌 줄이더라도 소비자가 바로 알아차릴수가 없다는 점으로 인해 주최측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빠르게 패권을 장악해갔다.
한편, 흔히 '깝류'라고도 불리우는 '곽류'는, 네모반듯한 하드카바로 포장된 과자류들을 통칭하는 용어로서, 보통 길쭉한 꽉에 담겨있는 '긴꽉류'와 상대적으로 넓적한 꽉에 담겨있는 '넓적꽉류'로 세분화 되고 있다.
어쨌든, 과거 구멍가게에서는 볼 수 없었던 편의점의 있어보이는 반듯한 진열로 인해 확립된 이러한 장르 구분은, 지나치게 포장과 겉모양에만 집중되고 있음으로 해서,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될 과자계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중차대한 오류를, 아이스크림계에 이어 또다시 범하고 있다.
과자계 3大 학파
과자계는, 그 모든 분류에 우선하여 다음과 같은 3대 학파로 분류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는 바로, '뻥류'와 '튀김류', 그리고 '구이류'이다.
이는 말할것도 없이, 과자의 원재료를 가공하는 방법에 따른 大분류로서, 이는 과자의 기름기와 촉감, 그리고 가격에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실로 결정적인 요소인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3大 학파는 제작 비용의 차이로 인해 각기 다른 가격대 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는 구이류
튀김류
뻥류의 순서로 피라미드형을 이루고 있다.
이 중, '구이류'는 상대적으로 가장 높은 가격대를 형성함으로 인해 세 학파중 가장 취약한 대중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구이류' 학파에서, 안느끼함이라는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나름대로 낮은 가격과 많은 양으로 정통 구이류의 대중적 기반을 지켜냈던 걸출한 작품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의 리뷰 재료의 전신인 舊 <고소미>였던 것이다.
구이류의 걸작 舊 <고소미>
일단, 舊 <고소미>의 포장은 희뿌연 비니루 봉다리로서, 이는 초창기에 자칫 뻥류와 혼동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하여, 학계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허나, 이는 곽에 담긴 모든 과자에 대해 위화감을 느끼던 저예산 유저들에 대한 배려임과 동시에, 유저들에게 내용물의 희뿌연 실루엣만을 드러냄으로써 구이류로서의 신비감 또한 잃지 않도록 한, 고도의 설정에 다름이 아니었던 바, 2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치밀함에 찬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또한, 짠맛과 단맛이 오묘롭게 조화된 균형미를 이루어낸 맛과 더불어, 舊 <고소미>는 당시로서는 가히 획기적이었다 할 수 있는, 참깨형 좁쌀튀김이 아닌 진짜 참깨를 박아넣는 과감한 시도를 함으로써,구이류를 넘어서 과자계 전체에 있어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어 내었다.
게다가, 일반 국민학생급 아동 두명이 한 봉다리 나눠먹으면 약간 아쉬울 정도의 약올리는듯한 양조절은, 초창기의 고급과자 컨셉에서 점점 양으로 승부하는 컨셉으로 흘러가 버린 <새우깡>등과 대조되며, 아직까지도 유저들의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新 <고소미>
그리고 마침내,
최근 이 <고소미>가 최근 리메이크 되었다. 실로 감개무량하게도.
일찌기, 날로 깊어만가는 식탐의 세계에 조용히 귀의하였던 필자가, 이러한 사건을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20년간 헤어졌던 혈육을 상봉하는 심정....의 약 12% 정도의 가슴 벌렁거림을 애써 눌러가며, 필자는 인근 편의점으로 떨리는 발걸음을 옮기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뉴 <고소미>는 본지의 리뷰를 받게 되는, 초등학교 졸업시 개근상 수상에 필적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는데..
일단 포장면에서 보면, 뉴 <고소미>는 과거의 '봉다리류'적 정체성을 과감히 버린 채, '곽류'로 전향하였다. 그것도, 곽류 중에서도 매우 전위적인 형태라 평가받고 있는 '세로로 세운 깝'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예전에 '엄마 백원만..'을 읊조리며 각종 심부름 산업에 투입되어 과자비 벌이에 나섰던 유저들이, 이제는 당시와 비교될 수 없는 엄청난 경제 세력으로 성장한 시대적 변화를 감안하면, 나름대로 고급 컨셉으로 밀어붙인 <고소미> 껍디의 변화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마분지 깝 내부에서, 내용물을 은박지형 비니루로 한 번 더 감싸는 컨셉은 오바였다 사료된다. 과자가 무슨 재처리 핵 연료봉도 아닌데, 싸고 싸고 또 싸구 그랬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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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꽈자의 본질은 맛에 있지 그 포장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포장의 변화는 평가에 있어 핵심적 요소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먹는거는, 어쨌거나 맛이 중요한거다, 맛이.
그리하여, 그 2단 포장을 통과하여 뉴 <고소미>의 실체를 목도한 순간... 아, 舊 <고소미>로부터 너무나도 동떨어져,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가버리고 만 新 <고소미>의 엄청난 변화 앞에서, 필자는 육질 깊이 서서히 배어오는 습기도 잊은 채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었더랬다.
그 변화란 바로, 꽈배기, 찹쌀 도나스, 꼬다리 핫도그 등의 식품에서나 발견할 수 있었던 '표면 설탕 도포 기법'이었던 것이다.
보이는가.. 저 불길하게 번득이는 설탕층의 광채가
아, 단맛과 짠맛을 절묘한 황금비율로 배분하였던 舊 <고소미>의 그 맛.. 그 맛을 기억하시는가.
다름아닌 바로 그 <고소미>의 표면에, 두껍디 두꺼운 설탕층을 도포할 줄이야... 다 된 김장 김치에 설탕 한 포대 뿌려댄 듯한 이러한 만행을, 다른 측도 아닌 주최측이 스스로 저질렀다는 이 엄혹한 현실앞에서, 경악이 아닌 그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으리요!
이제 우리는 <고소미>를 먹을때마다 사시미칼, 사포, 3중날 면도기 등의 연장을 동원한 '설탕 박피 기법'을 통하여 일일이 단맛 삭감 공정을 시행해야만 할 것이란 말이던가. 아아....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였다. 당 과자 新 <고소미>의 본체를 씹는 순간, 필자는 단순한 단맛 삭감만으로는 결코 新 <고소미>가 저지른 만행을 덮어놓을 수 없다는 좌절감을 직면하여야만 했다.
그 만행의 이름은, 다름아닌, 코코넛 맛이었다.
<고소미>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고소미>적 맛의 세계는 온데간데 없고, 쇠락한 <빠다 코코넛>의 맛만이 舊 <고소미>를 어설피 흉내낸 겉모양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더우기, 30년 말린 순두부마냥 푸석푸석 부스러지는 그 허무한 감촉은 웬말이며, <빠다 코코넛>과 <틴틴 크래커> 사이 어딘가를 헤메이고 있는 그 정체모를 두께는 또 웬말이며, 그 저변에 깊게 뿌리 박혀있는 느끼함은 또 웬말이란 말인가.
대체 어찌 이것이 백주대낮 <고소미>라는 이름하에서 용납될 수 있더란 말인가!!
결론
....갑자기 흥분을 해버리는 바람에 파편이 다소 튀었다..
자, 이제 흥분을 가라 앉히고...
결론을 논해보도록 하자.
사실 新 <고소미>는, 과자 그 자체로만 본다면 적어도 중급 정도의 맛은 보유하고 있는 과자다. 단맛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는데다 느끼함마저 평균치를 상회하고 있어 비교적 빨리 질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만 보완된다면, 중상급도 노려볼 수 있는 과자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과자가 과거 구이류의 걸작 舊 <고소미>의 광휘을 등에 업고, 그 후계자를 자임하며 등장하였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고소미>의 부활 소식에 환호하였던 것은, 그 이름이 아닌, 그 맛의 부활 때문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필자는 이 문제의 新 <고소미>에 대해, 舊 <고소미>가 보유하고 있던 <고소미>적 정체성의 연장선상에서보다는, 기냥 뜬금없이 등장한 동명이인의 과자로서 이해하는 쪽이 골치 안아프고 마음 편하리라는 결론에 봉착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취향도 변하며, 과자계 역시 그에 맞춰 일신우일신 하여야 하리.
허나, 그것이 과거 걸작의 엑기스를 추출하여 오늘에 맞게 새롭게 변모시키는 것이 아닌, 단지 과거의 이름만을 계승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옳다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이유로 필자는, 주최측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적극 권고한다.
1. 新 <고소미>를 다른 이름으로 개명을 해 주시기 바란다. 그 예로는 <초박형 빠다 코코넛> 등이 있을 수 있겠다.
2. 또는, 앞으로 계속될 新 <고소미>의 업그레이드 과정에 있어 단맛과 짠맛의 절묘한 균형 / 특유의 참깨맛 / 좀 더 쫀쫀하고 딱딱한 씹는 맛 등의, 舊 <고소미>적 장점을 획기적으로 반영시켜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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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이지신...
이 진부한 말의 의미가 다시금 중요하게 다가오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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