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혼타스> <아나스타샤> <타잔>등 디즈니가 내놓은 일단의 셀 애니메이션들이 범아동권의 지지를 획득하는데 실패한 가운데, 최근 셀 애니메이션과 3D 애니메이션을 짬뽕했던 <보물성>마저 엄청난 수심의 죽을 쑤자, 이제 디즈니가 삐댈 언덕은 역시 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밖에 없다는 인식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이에, 그 등장과 함께 <벅스 라이프>를 제치고 용산 전자상가 TV 매장의 메인 상영 푸로로 급성장할 정도의 기술적인 완성도와 함께, 각종 햄버거 가게의 장난감 세트메뉴계를 일거에 평정할 정도의 캐릭터 구축력을 보여줬던 <몬스터 주식회사>의 성공은 픽사 영화에 대한 기대와 신뢰와 줏가를 한방에 끌어올렸더랬다. ...걔네 영화, 원래 줏가 높았다구? 그럼 뭐, 그랬나부지. 어쨌거나.

<몬스터 주식회사>에 이은 픽사의 신작 <니모를 찾아서>는, 그런 이유로 상당한 기대감이 가는 영화였다. 원래 아동스러운거, 가족스러운거 뭐 이런거에는 고양이가 강냉이에 보이는 관심 이상은 없는 필자에게 마저 말이다.

어쨌든, 필자의 작지만 예리한 눈이 극장의 문밖에 걸려있던 이 영화의 포스터를 처음 목도했던 순간,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파노라마쳐 갔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필자의 일백푸로 착각이었다.

그 ‘니모’는, 절대 그런 ‘니모’가 아니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그 ‘니모’란 다름아닌, 포스터의 왼쪽에 있는 빨간 고기의 아들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오른쪽이 아들

영화가 10분 정도 경과한 다음에야, 이 영화가 인간한테 납치당해 치과 병실 어항에 갇힌 아들을 구하러 가는 아빠 물고기의 얘기라는 것을 눈치깐 필자는, 마치 바귀벌레와도 같은 적응성으로 관람모드를 잽싸게 헐리우드産 ‘가족무비’ 모드로 변경했다. ‘뭐, 가족무비면 어떠냐. 재밌으면 땡이지. 어차피 <패밀리맨>같은 영화도, 동의는 하지 않았어도, 감동은 제대로 한 번 해주지 않았더냐.’

그렇다. 필자와 같이 동심의 세계를 완전상실하여 어둠의 뒷골목을 배회하는 어른들에게는 아동스런 컨셉을 소화해내기위해, 위와 같은 강력한 자기 암시와 그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필요한 법이 아니더냐. 최대한의 관람료 본전 회수를 위해서 말이다.

어쨌든,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이 영화는 어쨌든 ‘finding’하러 가는 영화니까, 어쨌든 배경이 계속 변한다. 그리고 거기서 오토매틱하게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주인공들은 얘들을 만난다. 그러면서 주인공들이 겪는 각종 우여곡절이 이 영화 스토리의 주종을 이룰 것이라는건 전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기뢰밭 잠수함 안에서 육식을 안하기로 선언하는 모임을 여는 상어들을 만나고

그러다가 심해로 들어가서 아귀(인지 뭔지 하여튼 그런 비슷한 생선)가 미끼로 켜놓은 등불에 넘어가서 먹힘을 당할뻔 하고

거기서 탈출해서, 지나가는 물고기떼한테 길을 물어보고

걔들 충고 안듣고 해파리떼 안으로 들어가서 죽을뻔하는 고비를 넘겼다가

또,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어찌어찌 탈출한다..

등등의 각종 모험 컬렉션을 보여준다. 근데..

이 에피소드들은 그냥 엠티가서 급하게 한 밥의 밥알처럼 서로 따로 노니 이 아니 안타까울쏘냐. 즉, 이 영화가 내놓는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은 하나의 전체적인 얘기안에서 풀려나가면서 관객을 점점 얘기속으로 빠뜨리는 그런게 아니었다는 얘기다.

<스타워즈>(특히 <에피소드 IV 새로운 희망>나 <에피소드 V 제국의 역습>)를 보라. 아니면, <미래소년 코난>의 경우를 보자. 아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픽사의 전작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자. 이 영화들은 계속해서 이곳 저곳을 배경을 옮겨다니고, 덩달아 주인공들도 벼라별 일들을 다 겪게 되는데, 그걸 보면서 웃고 즐기는 사이 어느새 스토리는 클라이맥스를 향해서 치닫고.. 이 영화들은 그러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근데, <니모를 찾아서>가 줄줄 나열하는 에피소드들은 그 중 하나나 두개 정도를 빼거나, 순서를 바꿔놔도 전혀라고 해도 좋을만큼 스토리에 지장을 안준다는 점에서, 우리 소식적 자연시간에 만들었던 꼬마전구 병렬연결과 원리가 동일하다 하겠다. 그리고 이는, 에피소드 하나가 아무리 요란시끌벅적하게 최선을 다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각종 개그를 흩뿌려줘도 별다른 감흥이 남지 않는다는 결과를 초래하고야 만다. 앞 에피소드의 탄력을 뒷 에피소드가 받아서 얘기를 점점 고조시켜 나가는, 그런게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관객 입장에서는 한 에피소드가 끝나고 다음 에피소드가 시작되면, 어허.. 뭐가 또 하나 지나갔나..하는 생각만 들게 되는 것이다.

한가지 더, 이 영화가 두고 있는 결정적인 패착이 있는데, 그건 바로 ‘지나친 인간화의 오류’다.

게다가 그 인간화는, 그냥 보통의 인간화도 아니고, 미국인化다.

<토이 스토리>에서 장난감들이야 원래 인간세계에 종사하고 있는 애들인데다가, 미제 장난감이니까 다소(가 아니라 상당히이지만) 미국인화 되는건 이해가 가지 않는 바가 아니다. 또, <몬스터 주식회사>는 완전히 가상의 세계를 상상해서 만들었으니까 약간 미국스러운 면이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간다. 아니, 얘들 뿐만이 아니고, 미국영화가 미국냄새 살짝 풍겨준다는데, 뭐 대놓고 시비걸면 예의가 아니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지나친 것이 문제다. <니모를 찾아서>는 그 제목의 발음과도 같이 과다한 빠다향 풍기는, 지들끼리만 알아먹을 쪼크를 구사한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이 영화는, 미국애들 아니면 별로 필이 오지 않을만한 장면들이나 대사, 그리고 설정들을 곳곳에다가 박아놨다. 한마디로 생선의 탈을 쓴 등장인물(아니, 등장어물)들이 완전 미국애들이니, 그 아니 공감대 형성 안될쏘냐라는 얘기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위에서 얘기한 개과천선 상어들의 모임은, <어바웃 어 보이>에서 봤던 ‘애들 혼자 키우는 부모들의 모임’이라든지, ‘콜라 중독 극복모임’, ‘여자 대머리 모임’ 등 미국의 그런 모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왜 그런거 있잖어, 한명씩 앞으로 나와서 뭔가 고백하고 박수쳐주고 그러는거, 어디선가 한 번 보신적이 있으실꺼다.

바로 그 형식을 빌고 있는, 상어들의 에피소드는 그런 문화를 완전 가깝게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그닥 재밌지 않을, 또는 수다스럽게만 나껴질 쪼크들을 구사하고 있다. ‘다정한 채식주의 상어로 거듭나기 위한 “5단계 프로그램”’ 뭐 그런걸 가지고 계속 쪼크를 하는데, 이건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한테 홈쑈핑 필로다가 초식 상어 삼종세트어쩌구하면서 쪼크하는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걔들이 우리의 그런 필을 이해하기 힘들듯, 우리도 걔들의 그런 필을 이해하기 힘든거 아닌가.

픽사가 전작 <몬스터 주식회사>에서는, 꽤나 기발찬 캐릭터들과 영화속 세계 안에서 만들어진 재밌는 상황들을 가지고 각종 재밌는 쪼크들을 만들어냈던걸 생각하면, 얘들이 왜 이랬나 싶다. 주인공이 생선이라는 점을 봐도 그렇고, 제작비를 봐도 그렇고, 브에나 비스타 배급망을 타고 전세계로 배급하는 걸 봐도 그렇고, 기타등등을 종합해봐도, 이 영화는 미국 관객만이 아닌 다른 나라 관객들도 같이 겨냥해서 만든 영화인거 같은데 말이다.

게다가, <니모를 찾아서>는 바닷속 세계를 배경으로 삼았고 물고기를 캐릭터로 썼으니 물고기만의 시각과 입장에서 재밌는 상황들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생선들은 물안경에 써있는 영어글자를 읽고, 리더스 다이제스트 잡지를 알아보고, 인간의 말로 고래 울음 흉내내고, 떼지어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모양을 만들어내고, 심지어는 물고기 주제에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려있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 영화에 나오는 생선들은 껍디만 생선이지 내용물은 완전 인간이라는 얘기다.

"우리 생선 맞냐..?"

어쨌든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몬스터 주식회사>의 외눈깔 마이크 와조스키가 선보였던 눈꺼풀 땡겼다놓기 쑈라던가, 로즈 할머니의 NG 장면모음 같은 것들이 그리웠다.

근데, 사정이 이렇다면, 왜 하필 바다이고 생선들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건 뭐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거지만, 바닷물과 그 안에서 노니는 각종 물고기라는 설정이야말로 픽사의 새로운 기술력으로 만들어낸 화려한 비주얼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설정이기 때문이다. 즉, <벅스 라이프>에서 나방의 화려한 날개를 그린 CG가 있었듯,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지니의 털을 그린 CG이 있었듯, 이번 <니모를 찾아서>에는 물속과 그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들 CG가 있는 것이다.

뭐, CG 기술력 한 번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굳이 말할 것도 없이 위의 이미지들을 봐도 아시겠지만, 단연 성공적이다. 픽사가 어떤 애들인데, 오죽이나 잘했겠는가. 이 영화의 각종 장면들은 그 완성도면에서 예전과 다름없는 살벌난 수준을 과시한다.

하지만, 이런 훌륭하기 짝이 없는 그림도 한시간이 넘도록 계속보고 있노라면 나중에는 별로 신기하지도 않고, 당연한 것으로 보게 되는게 인간의 적응력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결국 우리가 초점을 맞추게 되는 부분은 다름아닌 캐릭터의 매력과 스토리의 재미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자칫 방심한 순간 졸아버리기 딱 좋은 영화라는 건, 그 화려한 CG에도 불구하고 그닥 변함이 없다.

[덧붙여서]

그럼, 이 영화 재밌는 구석은 하나도 없는가.

물론 그건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주연급들보다도 엑스트라들이 보여주는 순간적 유머가 발군인데, 특히 영화를 통해 딱 한 번 출연하는 엑스트라 펠리컨 두 마리의 방구씬은 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제일 웃기는 장면이었다. 물론, 오줌싸는 유아 문어와, 갈매기들의 “my" 울음소리도 뺄 수 없구.

근데, 그 갈매기들 아무리 봐도 <월레스 앤 그로밋>의 나쁜놈 펭귄을 닮았다고 사료된다.

안그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