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를 보고 나서



음주운전

Q : 뭘 아직도 알고 있다는 말인가?

A : 그건 당연히 네가 지난 여름에 음주운전을 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말이다. 전편 <나는 네가..>의 교훈은 '음주운전을 하지 맙시다'였는데, <나는 아직도..>의 교훈 또한 "아직도" '음주운전을 하지 맙시다'이다. 하지만 이경규씨가 눈알을 굴리면서 등장하지는 않는다.


Q : "아직도" 음주운전하는 십대들이 등장하나?

A : 아니다. <나는 아직도..>에서는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역시 전편에서 갈고리 맨의 위력은 대단했다고 사료된다. 음주운전이 다 뭔가. 전편의 생존자중의 한명이자, 이제는 대학생이 된 이 영화의 주인공 줄리(제니퍼 러브 휴이트 분)는 백주 대낮 강의실에서 비명을 지를 정도가 됐다. 그야말로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가 된거다.

Q : 그럼 니가 말한 '음주운전'이란 뭔가?

A : 그건 전편의 음주운전을 얘기하는 거다. 전편인 <나는 네가..>에서의 음주운전 한 껀 때문에 아직도 갈고리 맨이 설치고 다닌다는 얘기다. 게다가 그 한 껀이, 입춘이 지난 늦겨울에 호러영화를 보게 만들고 있으니까. 어 춥다.. 꼭 무서워서 추운것만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는 여러모로 추운 영화다.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Q : 왜 춥나?

A : 우선 전반부에서 관객을 춥게 만드는 요인은 주인공 줄리의 신경쇠약이다.

전반부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의 제목으로는 "나는 아직도 신경쇠약에 걸려있다"가 더 적합할 것이다. 관객을 놀라게 하는 모든 것들은 줄리의 신경쇠약이 만들어 낸 것들이니까 말이다.

처음에는 그 신경쇠약, 은근히 겁난다. 특히 오프닝의 고백성사 장면은 꽤 으시시 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긴장시키고, 놀라게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이건, 두세번 정도 겪고나면 나중에는 "또냐? 그거 갈고리 맨 아니란거 다 알어."라고 생각하게 되는거다. 그리하여 관객들은 썰렁한 추위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Q : 그럼 전반부는 내내 그렇게 시시한가?

A : 물론 아니다. 헐리우드에서 돈 벌려구 작정하고 만든 영환데 그 정도로 순진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꺼다. 영화는 관객들이 줄리의 신경과민에 질릴때쯤에 진짜 갈고리 맨을 짠! 등장시킨다. "긴장 풀지 마란 말이야"라는 듯이 말이다.

갈고리 맨은 좀 더 잔인해진 업그레이드 버전이 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이 바하마로 떠나기 전(본격적인 갈고리질이 시작되기 전)까지인 이 전반부가 오히려 후반부보다 훨 낫다.


Q : 어떤 식으로 더 낫다는 얘긴가?

A : 원래 공포감이란,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익숙한 곳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을때 커지는 것 아니겠는가. 관객이 느끼는 조마조마도 등장 인물들이 일상적인 곳에 있을때 더 커지기 마련이다.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긴장감. 전반부에서는 그리 특출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그런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바하마는 결코 그런 공간이 아니다.

그 공간은 공포스럽기에는 너무 인공적이고, 절박하기에는 너무 리조트적이다.


바하마의 잠 못 이루는 밤

Q : 난데없이 바하마는 뭔가?

A : 내 얘기가 그거다. 등장인물들이 아주 난데없이 바하마에 간다. 바하마에는 왜 갔겠는가. 물론 영화에서는 줄리의 룸메이트 칼라(브랜디 노우드 분)가 라디오 방송의 퀴즈를 맞춰서 공짜 여행권을 얻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속셈은 다른데 있다.

표면에 드러나는 현상과 그 원인이 되는 본질은 다르기 마련.. 어쨌든 그 속셈은 빤히 보인다.

그 이유가

① 주인공들이 빼도박도 못하는 고립된 상황 만들기

② 관객들(특히 남성 관객들)에게 눈요깃 거리 제공하기

③ 신비적인/주술적인 사교(邪敎) 비시무리한걸 도입해서 관객 겁주기(촛불, 검은 고양이 시체, 중얼중얼 주문을 외는 정체불명의 사나이 등등)

등이 될거라는건 물론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셨을꺼라 믿는다.


Q : 바하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나?

A : 물으실 필요도 없이, 갈고리맨의 난도질이다. 전편에서는 조준사격을 하던 갈고리맨, 이젠 이성을 잃고 무차별로 난도질을 한다.

갈고리맨이 왜 이성을 잃었냐구? 속편이니까. 전편보다 나은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각본과 감독의 강박관념이 갈고리맨에게서 이성을 앗아갔다. 덕분에 영화 마지막에 드러나는 갈고리맨의 살인 동기는 너무나 설득력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전편도 여러모로 범작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 영화였는데 장사가 잘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만들어진 속편이니, 물량을 더 많이 쏟아붓고, 쓸데없이 '스케일'만 키우고, 더 잔인한 장면을 많이 넣는건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었던 수순이었을 것이다.

바하마의 이국적인 호텔, 억수같이 내리는 비, 여성분들이 "웬일이야.."를 신음처럼 흘리실만한 잔인한 장면같은 것들은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Q :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바하마였던가?

A : 글쎄다. 왜 하필이면 바하마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하마가 가지고 있는 충분조건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섬이라는 것이다.

왜 섬일까?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섬을 배경 삼은건 '고립된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한 포석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배가 뜨지 못하는 폭풍우가 닥쳐와야겠지? 닥쳐온다.

그리고 그 비로 바하마의 이국적 호텔은 갈고리맨과 아이들이 살인 게임을 하면서 뛰어노는 폐쇄공간으로 설정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내 생각으로는 그리 좋지 못하다. 하도 호텔 안을 이리저리 산만하게 왔다갔다해서 관객들의 집중력만 떨어뜨릴 뿐이다. 게다가 관객들의 조마조마를 자아내기 위한 장치들(도방치다 발이 빠진다던가, 밖에서 자물쇠가 걸려있고 갈고리맨이 등뒤에서 다가온다던가)도 별로 새로울게 없다.

관객들과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벌이는게 아닌 이상, 이렇게 뻔하면 상당히 곤란하디.

그건 그렇고,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바하마였을까? 그건 정말 모르겠다.


갈고리의 계략

Q : 갈고리맨의 출생신분은 어떻게 되나?

A : 내 생각으로 갈고리맨은 명문 사대부 가문 자제 출신이 아닌가 사려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 뛰지 않는 갈고리맨의 위엄있는 걸음걸이가 그 증거다. 코앞의 목표물 앞에서도 경거망동하여 가벼이 행동치 않고 절대 천천히 걷는다. 물론 항상 의관(衣冠)을 정제(淨濟)하고 말이다.


Q : 그렇다면 시나리오와 감독의 출생신분은 어떻게 되나?

A : 그 분들 또한 양반댁 자제들이 아닌가 한다. 영화가 어찌어찌 마무리되고 난 다음, 그 다음 얘기를 궁금해 할 관객들을 위해 에필로그를 만들어 떠나는 손님 서운하지 않게 접대하려는 그 마음 씀씀이는 양반댁 자제로서 손색이 없지만, 손님을 접대하는 예법은 좀 더 배워야 하지 않을까 사려된다. 대부분의 손님이 "뭐야.."라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떠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전편처럼 이 시리즈의 속편이 또 나올것이라는 암시를 해, 관객들에게 부담과 함께 망연한 심정을 안기는 등의 결례를 범하지 않은것은 과연 양반댁 자제들 답다.


Q : 결과적으로 '갈고리의 계략'은 성공했나?

A : 영화가 끝나고 어떤 관객이 이런 독백을 하는 것이 목격됐다.

"야 인젠 지겹다, 지겨워"

안타깝게도 나도 그 독백에 공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스크림>으로 부활될 것 같았던 잔혹/공포/서스펜스 영화가 후계자 몇 편 내놓지도 못하고 다시 원점으로 퇴행해가고 있는것 같다.

주인공을 죽이려던 갈고리맨의 계략과 90년대의 프레디 크루거가 되려던 갈고리맨의 계략은 이로써 동시에 실패해 버리고 만다.

주인공 줄리는 "I will survive"를 꽤나 열심히 불렀지만, 이 영화가 3편까지 survive할 것을 기대하는 관객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 같다.

1999.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