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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한국판)을 보고 나서
1.
<링>을 보고 나서 한가지 오래된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공포영화'라고 부르는 영화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과연 '공포'라고 부를만한 것일까. 우리는 공포영화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일까? 아마도 이 질문은 대부분의('모든'이 아니라 '대부분'이다) 공포영화들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되는데, 가장 가깝게, 최근에 한창 유행했었던 공포영화..가 아닌 난도질 영화들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이 영화들을 보고 옆 친구의 팔을 끌어안고, 발을 구르고, 철철 흐르도록 손에 땀을 쥐고, 비명을 올렸던게 과연 '무서워서'였을까.
물론 그리고 역시 대답은 '아니'다.
그럼 뭘까. '공포'영화에서 우리의 심장 박동수를 빠르게 만드는 건 뭘까. 그건 대략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깜짝 효과'와 '동정심(또는 공감대)'.
우선 '깜짝 효과'에 대해서는 굳이 이 자리에서 얘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알지? 극장안에는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있는 주인공(주로 여성)의 가쁜 숨소리만 들리고, 뭔가 일어날 것 같이 조마조마.. 그러다가 갑자기 '쾅!'하는 효과음과 함께 뭔가가 튀어나오는데! 결국 그 튀어나오는 건 열이면 아홉 주인공의 친구라던가, 고양이라던가, 벽장속에 쳐박아 두었던 잡동사니라던가 하는 '안전한' 것들이고..
뭐 이런 장면들에서 비명을 지르게되는 현상이, 우리가 '공포'라고 부르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는 건 확실한거 같다.
또 하나, '동정심(또는 공감대)'에 대해서는 얘기가 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우리는 대부분 이것을 공포라고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공포가 아니라,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고, '끔찍함에 대한 혐오감'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완전 무방비의 방심상태에 있는 주인공의 목에 갈고리가 꽂힌다던지, 덱데굴 머리가 굴러다닌다던지 하는 장면을 보고 많은 관객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내지는 신음 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 비명이 공포에서 나왔다고 할 수는 없다. 이건 그렇게 심한 일을 당하는 등장인물에 대한 동정심('얼마나 아플까..'), 그리고 등장인물과 자신의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공감대('내가 저런거 당하면 정말 짜증나게 아플꺼야..' )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하지 않을까(이것이 '공포영화'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틴 에이저인 이유 중 하나이다. 십대야말로 영화의 주인공과 자신을 가장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세대니까 말이다).
어쨌든 "저는 공포영화 싫어해요"라고 말씀하시는 대부분의 분들은, 밤에 혼자 화장실 못 갈 정도의 공포를 느끼는 걸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잔인하고 끔찍하고 징그러운 걸 보기 싫어할 뿐이다. 어린시절 닭 잡는 광경을 한 번 보고, KFC의 근처에도 안 가는 사람처럼. 이 사람이 '닭고기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얘기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무슨 얘길하고 싶은 거냐구? 결국, 우리가 공포영화라고 부르는 영화들은 최소한 미국에서는 공포영화(scary movie)였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부분은 '깜짝 영화'나 '칼질 영화', '도살 영화', '해부 영화' 등등으로 불러야 할 것들이다.
그럼, 그렇다면, '공포'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란 어떤 영화일까? 간단하다. 그건 우리의 '눈'이 아닌, '심리'에 호소하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영화이다. 우리의 마음 속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그것을 뒤흔들고 끄집어내는 영화이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링>은 분명 '공포'영화라고 부를수 있는 영화다.
2.
필자는 이 영화의 원작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소설의 몫이고, 어디까지가 영화의 몫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확실히 무섭다. 몇가지 결정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웃음기 하나없는 싸늘한 공포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영화의 줄거리에 대한 것은 빼고 얘기해보겠다.
우선 기괴한 이미지. '링' 비디오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의 일그러진 얼굴(꿈에 나타날까봐 두렵다)부터 시작해서, 빗물로 얼룩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이지러진 바위들과 콘도미니엄은 어떤 CG로 만든 악마의 성보다 더 악의에 차 보이며, 저주의 주인공 '은서(배두나 분)'의 집에 늘어진 거미줄같은 커튼은 마치 시체의 머리카락 같아 보인다. 참신한 촬영과 적절한 조명,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술/세트디자인의 공로다. 특히 미술/세트디자인(윤기찬)은 <퇴마록>과 <건축무한..>에는 없었던 찐득한 공포를 만들어고 있다.
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축인 '저주의 비디오'의 화면을 애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초능력으로 염사된", 한 술 더 떠 "죽음의 세계로부터 온" 비디오라는 걸 이 정도로 그럴듯하게 보여주는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와 <더 월>의 이미지들을 섞어 놓은 듯한 이 비디오에, 영화를 끌어나갈 저주의 실마리들을 담는 솜씨는 상당히 좋다.
두번째, 침묵과 음악. 음악이나 영화 모두, 소리 못지 않게 침묵의 여백도 중요한 법인데 이 영화는 쉼표를 제대로 쓰고 있다. 오프닝에서 '상미'가 죽기 바로 전에 그 어떤 겁나는 음악보다도 더 차갑고 불안하게 흐르던 정적을 생각해보시길. 또한 음악을 써야 할 장면과 쓰지 말아야 할 장면을 제대로 짚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원일의 음악은 '네번째 주인공'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결정적이다. 저주가 시작될 때마다 들려오는 낡은 오르골 소리부터 엔딩의 음악은, 악몽에서(그것도 동양인!의 악몽에서) 그대로 끄집어낸 듯하다. 관객을 앞질러 감정을 강요하는 헐리우드 영화의 오케스트라 음악이나, 흘러간 팝들을 끌어모아 OST 팔아먹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영화 음악에 실망하신 분들은 <링>의 음악에 한번쯤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세번째, 캐스팅과 연기. 특히 삐딱하고 똑똑한 의사 '최 열'역에 정진영을 캐스팅한 것은 이 영화가 거둔 가장 큰 성공이다. 첫 장면, 병원 지하 부검실에 있을때 그는 정말 의사같아 보인다. 예를 들어 "섹스는 한 일년 정도 못 해봤을테고-오"라는 대사를 읊을 때 그는 전형적인 '의사 억양'을 구사하고 있다. <닫힌 교문을 열며>에서 열혈 선생님역을 하던, <초록 물고기>에서 트럭 배추장사 역을 하던 정진영은 어디로 간 것인가. 관객들의 실소를 끌어내기 딱 알맞은 몇몇 아슬아슬한 대사들은 그의 연기 덕분에 비웃음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가장 걱정됐었던 신은경의 연기가 좋았던거다. <건축무한..>에서 당했던 경험도 있던터라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웬걸, 신은경은 딸 하나 둔 30대 초반의 기자 '홍선주' 역을, 그보다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눈 앞에 둔 여인 '홍선주' 역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그녀의 동료 기자 '김 선배'를 연기한 김창완의 부시시 하면서도 약간은 샤프해진 연기도 좋았고. "이젠 가수 김창완이 아니라 연기자 김창완으로 불러달라"고 했다는 얘길듣고 산울림 팬의 한 사람으로서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았었는데, 뭐, 연기가 이 정도라면야..
네번째는, 연출. 진부한 헐리우드식 공포와 타협하지 않은, 그리고 이것저것 흥행에 도움될만한 요소들(섹스, 로맨스, 난도질, 코미디 등등)을 과감하게 배제하고 '공포'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김동빈 감독의 일관된 연출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들은 '<퇴마록> 투'나 '<닥터 K> 투'를 만들기 위한 도구들로 전락 했을지도 모른다.
3.
하지만 이런 감독의 연출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적어도 세 번 정도는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을 만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한다(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장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문제인 것은 편집인데, 이야기의 비약이나 생략이 너무 지나치다. '소외효과'를 노리는 실험영화 가 아닌 이상은, 관객들이 무리없이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도록 편집했어야 옳았다.
물론 설명하는데 꽤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은서'가 남성과 여성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는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은 결정적이다. 물론 고감도 흑백 필름으로 촬영된 은서의 목욕 장면에서 설명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어쨌든 관객들은 도입부의 미술관 장면은 왜 나왔는지, 은서의 배다른 오빠가 은서를 왜 죽였는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비디오를 만든 장본인을 추적하는 장면 중, '홍선주'와 '최열'이 심령학 연구소인 듯한 곳에 가서 은서의 단서를 찾아내는 과정은 아직까지도 아리송하다. 이 '저주 듀엣'이 은서의 배다른 오빠를 찾아내는 과정도 마찬가지고. 특히 이 장면에서는 장면전환에서 멋을 부리느라 이야기가 심하게 비약되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저주의 비디오'의 장면들을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맞춰 계속 삽입해줬더라면 훨씬 이야기가 매끈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어차피 사후 약방문이지, 뭐. CG로 만든 장면들이 실사를 배경으로 둥둥 떠다닌다던가, 녹음이 별로 좋지 않아 대사전달이 잘 안되는 부분이 있다던가, 태풍이 다가오는 바다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던가, 하루하루 흘러가는 날짜를 알리는 자막의 글자체
가 너무 깬다던가 하는 것도 역시.
그런데, 관객들이 '야, 이젠 끝이구나. 뭐 이리도 시시하게 끝난담..'하면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있을때, 최후의 반전을 들이대는 마지막 부분은 역시 꽤나 충격적이었다. 이 영화의 이런저런 하자들을 깜빡 잊게 만들 정도로.
비디오를 하나를 들고 도시로 뻗어있는 한 줄기 길을 달려가는 홍선주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이 영화의 제목이 '링 바이러스' 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것이다.
4.
그리고 필자는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가 돼서야 문득 깨달았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극장안이 거의 찬물 끼얹은 듯 조용했었다는 걸. 그런데 이 침묵은 '지루함'을 뜻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침묵은 내게 지금껏 거의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진짜 '공포'를 느끼고 있는 관객들은 거의 비명 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는 걸.
이거야말로 우리가 '공포'라고 부를만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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