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   앞의 '<용가리>를 보고 나서'라는 글은, 살벌난 돌팔매적 반응이 올 것을 어느 정도 예측한 상태에서 썼기 때문에, 사실 이런 보충글을 써야할 상황이 올것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이 글은 당시 '<용가리>를 보고 나서'에 붙었던 리플, 반박글, 그리고 메일에 대한 반박의 형태로 씌여졌지만, 그건 <용가리>에 대해 하고 싶었던 얘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방법일 뿐이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정작 <용가리>라는 영화보다는, 그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당시의 여러가지 코믹한 상황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뭐, 어쨌든, 그런 일들을 떠나본 지금, 나에게 <용가리>는 나름대로의 매력을 함유하고 있는 꽤 귀여운 영화다.

 
아래 <용가리>에 대한 열띤 옹호는 잘 읽어보았습니다. 자, 이 글들의 논지에 대해 몇 가지만 짚어보도록 하죠.


첫째,

혹시 <용가리>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CG와 SF라는 장르를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신 분께. 혹시, 작년 여름 이맘때 개봉했다가 소리소문 없이 간판을 내렸던 <철인 사천왕>이라는 작품을 기억하시는지요. CG와 SF로 따지자면 이 영화야말로 본격적인 원조지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시 이 영화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은 평가가 쏟아졌을때(저의 평을 포함) "한국 영화의 발전을 원하는" <용가리> 팬 여러분들은 어디 계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철인 사천왕>이 '한국 최초의 100퍼센트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라는 "누군가가 앞장서서 개척해 나아갈 길을" 갔을때, 이 분들의 목소리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둘째,

지금까지 "우리 자랑스런 용가리를 욕하지말라!"(울산 사는 한 고등학생분께서 제게 보낸 메일의 제목)는 내용의 글을 올리신 분들은 대부분 영화를 보지않으신 분들이었습니다. 시리즈 물도 아닌데,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해서 이리도 열띤 옹호를 하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요? 심형래 감독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7/15)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개봉 전에, 그것도 완성작을 선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절하를 하는게 가능한 일인가." 물론 절대 옳은 얘깁니다. 그런데 그 역 또한 성립하지 않을까요. 위 인용문에서 "평가절하"의 자리에 "무조건 옹호"를 대신 집어놓고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째,

"120억 들여서 만든 CG기술력이" "앞으로 만들어질 한국영화가 짚고 나아갈 지팡이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분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 상황을 눈여겨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손은 있는데 머리는 없다' 이것이 외국의 하청생산으로 "기술력"을 축적해 온 한국 애니메이션의 지금까지의 상황을 대변해주는 말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현재 한국의 애니메이션의 기술적인 수준은 (핵심적인 노하우를 제외하면)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적인 수준입니다만, 전문적인 시나리오 작가의 부재로 거의 작품다운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해왔습니다.

네째,

이 영화(사실은 '전야제'라는 이름의 퍼포먼스)를 보고 오신 분의 논지를 보니,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용가리 보고 좋아했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용가리>는 "어린이를 위한 영화"였다고 "심형래 감독은 전부터" 얘기 해왔구요? 정말인가 싶어 인터넷에 있는 용가리 관련 기사와 인터뷰를 모두 검색해 보았습니다만, 심형래 감독이 <용가리>를 어린이의 눈높이로 보아달라고 주문한 것은 시사회 당일의 인터뷰에서 뿐이었습니다(아니라면 알려주십시오). 그보다 훨씬 전(99년 4월)에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심 감독은 "영구아트무비 팀이 만든 공룡의 발톱 하나, 눈알 하나 우리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우리는 다른 무엇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합니다." "미국의 킹콩이 있으면 '용가리'가, 쥬라기 공원이 있으면 '이무기'가, 스타워즈가 있으면 '파워 킹'을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습니다."라고 얘기 했습니다. 역시 이 인터뷰에서도 "어린이의 눈으로 보시면 재밌을 껍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섯째,

위의 얘기와 연관된 이야기 입니다만, 또 하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용가리>에 대해 비판을 하면 그것은 "전문가의 시각"일 뿐이라고 일축해 버리는 억지입니다. 14일 시사회장에서 심형래 감독의 "비평가의 시각으로 보지말고 어린이의 시각으로 봐 주십시오"라는 발언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총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기본적인 완성도 - 저는 분명히 말씀드리건데, CG나 미니어처 같은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 에 대해서는 <용가리>를 옹호하시는 분들도 그리 쉽게 긍정을 못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분들 역시 영화 평론가나 전문가들은 아니겠죠. <용가리>에 대한 비판론과 옹호론을 평론가 대 일반관객의 대립구도로 몰아가는 논리는 무척이나 부당하게 느껴집니다.

여섯째,

아래에 인용되어 있는 한국일보의 기사를 잠깐 보도록 하지요.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은 아닐까."라는 부분입니다. 신문기사에 이런식의 주관적인 추측을 써서는 안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런데 그 기자분이 추측해 놓은 내용이 더 가관입니다. "하나는 질투심." 정말 할 말이 없어지네요.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행위는 모두 "질투심"이랍니다(물론 이것이 영화를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용가리> 에 대한 '추측성' 비난을 했던 한겨레 신문의 김보은 씨의 논조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또 하나는 피해의식. 영화자본을 뺏기는게 두렵다." 어휘 선정(특히 "피해의식")은 엉망이지만 이 지적은 적절합니다. <용가리>가 자신에게 투하된 120억이라는 자본의 가치를 충족하고 있을까요? <용가리>가 CG를 위한 "기술적 인프라"를 만들었다고 말씀하시렵니까? 그러면 <용가리>는 훌륭한 작품이 되는 것인지요? 그 문제는 작품 외적인 문제일 뿐더러(<용가리>는 철저히 작품 외적인 논리로 보여지고, 이야기되고 있는 영화입니다. 제가 <용가리>에 대해 "퍼포먼스"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작품의 완성도를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일곱째,

<용가리> 에 대한 비난이 심형래 감독이 개그맨 출신이기 때문에 그의 영화를 업신여긴다는 식의 비난이 전혀 근거없는 것임은 앞에서 말씀드린바와 같구요, 그가 '신 지식인 1호'로 선정된 것이 "배가 아파서" 그를 "질투"한다는 비난 역시 비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최소한 어떤 지적이 정당한 비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적절한 근거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덟째,

상명대 조희문 교수의 "<고질라> 식 할리우드 영화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생각에 저는 십분 동의합니다. 이것은 <퇴마록>, <쉬리>, <건축무한..> 모두에 해당될 수 있는 말이겠죠. 하지만 조희문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분들, 이걸 아시는지요. <용가리>를 헐리우드 영화들과 비교한 사람은 다름아닌 심형래 감독 본인이었다는 것을요. 다시 한 번 인용해 드리죠. "미국의 킹콩이 있으면 '용가리' 가, 쥬라기 공원이 있으면 '이무기'가, 스타워즈가 있으면 '파워 킹'을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습니다."

아홉째,

심형래 감독이 14일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 "『나도 모르는 길을 가고 있다. 힘을 달라. 내가 쓰러지는 것은 괜찮지만 우리 영상산업의 기술이 후퇴한다』"라는 발언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왜, <용가리>가 무너지면 한국의 "영상산업의 기술"이 후퇴하게 되는 겁니까? 또, <용가리>를 비판하는 것이 한국 영화의 발전을 왜 가로막는 겁니까?


이상의 얘기들을 종합해드리죠. <용가리>에 대해서 한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은, 이 영화가 보여지고, 논의되고 있는 논리는 다분히 영화외적인 논리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 마라!'던 얘기가, 이제는 '작품의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다!'로 변해있습니다. 그렇게 주장되는 논리 또한 "피땀 흘려 가며 7년간을 용가리에 매달려 온 영화 제작진들에게 그게 할 소립니까?" "심형래씨에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으신가 보군요." "난 보러갈 것이다. 앞으로 한국영화의 승리를 위해서.."라는 식의 '연민의 정' 아니면 감상적 국가주의입니다.

제가 '제 글 밤 잠 안자고 열심히 썼으니 제 글은 옳은 거예요'라고 얘기하는 것이 말이 안되듯, '이 영화 만드는데 진짜 고생했으니 이 영화에 대해 비판하면 안돼요'라고 얘기하는 것 또한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5년이 넘도록 애니메이션만에 매달려온 김 혁 감독을, 집 팔아 빚 갚고 월세 지하방에서 생활하게 만든 <철인 사천왕>에 대해서도 똑같은 지지와 옹호를 보냈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또한 "한국영화의 승리"란 무엇이며, <용가리>를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어떻게 "한국영화의 승리"를 가져오는지를 밝혀주실 것을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