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만 감독은 오랜 세월동안 갑빠를 숭앙하여,
이 시대 갑빠가 나아가야 할 올곧은 길을 찾고저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여 온, 아메리칸 네오
갑빠의 선두주자다.
근데, 그냥 갑빠면 갑빠지, 대체 ‘네오’
갑빠라 함은 대체 무엇인가.
이는 그의 최고의 히트작 <히트>를
보면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실베스타 형님, 장끌로드 형님 또는 돌프 형님 등
근육적(즉 물질적) 갑빠 중심의 배우들에만 의존하던 기존 힘자랑 무비들과는 달리,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등등의 근육의
바람이 행여 새나가지나 않을까 염려를 기울여 마땅할 연세의 큰형님들을 과감히 기용, 그들을
통해 당대 최고 수준의 박진감을 선보임으로써, 진정한 갑빠의 세계는 물질이 아닌 정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도록 하였던 영화, 즉 <히트> 같은 영화들을, 기존의
힘자랑 무비들과 구별키 위한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네오 갑빠는 사실, 아메리카국에서보다는
왕년 홍콩 등지에서 서극, 오우삼, 정소동 등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주창된 개념이었다.
허나, 아메리카국으로 건너간 뒤 그 본연의
뜻을 시러펴는 대신, 오히려 아메리카산 힘자랑 무비들보다도 더 강력한 민망함을 함유한 <미션
임파서블 2>를 만듦으로써, 바바리 코트와 다이빙 쌍권총 그리고 라이방 썬그라스로 연마하여
온 그 광채를 스스로 지우고, 결국 갑빠 주도권을 아메리카 측에 헌납한 오우삼의 행보 덕분에,
마이클 만은 <본 아이덴티디>,
<본 슈프리머시>등의 제이슨 본 시리즈까지 이어지는 아메리카산 네오 갑빠의 맹주로서
이제껏 탄탄히 군림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콜래트럴>까지, 나름대로 팽팽한
갑빠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던 그는, 왕년 TV 시리즈 시절 자신이 제작자로 참여했더랬던 <마이애미
바이스>를 리메이크 함에 있어 결국 ‘공허한 갑빠의 오류’를 범하고야 마니, 이는 갑빠
무비 애호가임을 자처하는 필자로서 가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던 바, 필자는 그 원인에
대해 곰곰 되새겨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마이애미 바이스>는 흥행을
위한 대부분의 요소들을 거의 다 보유하고 있다.
최근 가장 잘 나간다고 볼 수 있는 팽팽한
남자 배우가 흑백으로 한 명씩, 그리고 쿵후질이나 공중부양을 일삼지 않고 정상적으로 걸어다니는
동양계 여성 한 명이 주연을 해주고 있다.
게다가, 총, 슈퍼카, 섹스, 마약, 고속보트,
하드락 등등 미국 애들이 좋아할만한 것들은 물론이요, <히트>부터 익히 보아왔던
종군기자 기록필름을 방불케하는 세계 최고의 실감 총격전 장면 역시 어김없이 나와주고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당 영화는 그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했던 것인가.

물론 영화의 두 주인공들이 영화 내내 스크린
가득 흘리고 댕기는 고독한 승냥이적 눈빛이, ‘함정 수사를 하는 아메리칸 마약 단속 경찰’이라는
기득권 냄새 펑펑나는 그들의 직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는 점을, 그 원인 중 하나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이애미 바이스>의 갑빠를
공허하게 만들고 있는 더 큰 원인은, 당 영화가 이미 90년대에조차 진부했던 레파토리인 '마약과의
전쟁'을 그 주요컨셉으로 전면에 내밀고 있다는 점이다.
보자. 바야흐로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지금은 미국이, 자신들 맘에 안드는 애들을
조지기 위해 ‘마약 수출 근거지’ 따위의 핑계를 주워 섬기는 조잡한 짓을 하는 대신, ‘왠지
쟤가 테러국가일 거 같아요’라는 한 마디만을 던지며 기냥 화끈하게 들이받아 버리는 시대가
아닌가.
바로 이러한 ‘나쁜놈 설정에서의 시대착오’야말로,
<마이애미 바이스>의 리메이크가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아아, 이렇게, 아메리카 네오 갑빠의 거목
마이클 만 역시, 이전의 미국산 힘자랑 무비들이 걸었던 전철을 다시금 밟아가는 것인가.
그렇게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아....
씨네 21 567호
(06년 8월 넷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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