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의 행복설계사는 떡잎부터 달랐던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여튼 필자는 소시적 <마징가>, <짱가>, <날아라 태극호>, <독수리 5형제> 등등의 각종 TV 만화영화를 보며 상당량의 투덜을 일삼았다.

왜냐. 그것은, 막판까지 거의 이길듯이길듯 약을 올리다가, 단 한 방에 역전을 허용함으로써 참패 당하기를 매번 반복하는 나쁜놈 측의 역전패 행각 때문이었다.

필자의 투덜의 원인은 그러나, 단순히 패배 그 자체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 뭐냐. 위 만화영화들을 보신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시겠지만, 나쁜놈들은 매회마다 새로운 전략과 병기를 개발하여 착한편 측에 대항하는 고도의 진취성과 혁신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는 항시, 한두 종류의 로보트만을 이용, 매회 똑같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공격패턴만을 고수하는 나태함과 매너리즘을 자랑하는 착한 편의 것이었다.

그나마 그것도, ‘비너스의 부상을 목격한 마징가가 갑자기 듣도보도 못한 초인적 괴력을 발휘한다’ 등등의, 고대소설을 능가하는 우연성에 기반한 조또 개연성 없는 승리였던 것이다.

이러한 나쁜놈/착한편 간의 편파적 승부는, 암울하게도 21세기가 도래한 지금의 시점에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으니, <엑스맨 3>가 바로 그 전형적인 예다.

언뜻 보면 <엑스맨 3>는 마치, 온건한 돌연변이 ‘세이비어’ 측(착한편)과 급진적 돌연변이 ‘매그니토’ 측(나쁜놈)의 대결을 그 근간으로 삼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자세히 보면 <엑스맨 3>는, ‘큐어’라는 약을 통해 돌연변이들을 그 싹수부터 없애려하는 인간측과, 그런 인간들에 대항하여 돌연변이의 멸종을 막으려는 ‘매그니토’ 측과의 전쟁을 기본 축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울버린, 스톰 등의 주연급들이 대거 포진해있는 ‘세이비어’ 측은 뭐냐. 얘네들은 이 거대한 대결에서 인간들 쪽에 꼽사리 붙은, 극히 일부의 돌연변이들의 집단일 뿐이다.

자, 여기에서 ‘인간들’을 ‘미국’으로, ‘매그니토 측’을 ‘이라크 저항세력’으로, 그리고 ‘세이비어 측’을 ‘이라크 친미정권’ 측으로 대입시켜보자. 어떠신가. 바로 그림이 나오지 않으시는가.

뭐, 굳이 미국 vs 이라크가 아니어도 좋다. 위 항목들을 각각 ‘일제’, ‘독립군’, ‘친일파’로 대입해도 그림은 충분히 나온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영화 막판 ‘큐어’를 개발한 과학자가 날린 “난 너희들을 도와주려고 그런거야”라는 대사에 대해, 매그니토 측의 돌연변이 청년이 “누가 도와달랬냐?”라고 일갈하는 대목에서, 필자가 마음속 깊이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금문교까지 북북 뜯어내 공중부양시키는 등 보여줄 거 다 보여주었으면서도, 결국 착한편 측의 어이없는 승리를 통해 또 한 번의 분노와 실망을 안겼던 <엑스맨 3>.

대체 얼마나 많은 ‘나쁜놈’들의 희생이 있어야 이 뿌리깊은 편파적 승부가 종식될 것인가. 아....

씨네 21 558호 (06년 6월 셋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