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컨셉 몽조리 우겨넣으려는 의욕은 부담스레 난무하였으나, 건질 건 그닥 없었던 피터 잭슨의 신작 <킹콩> 또는 ‘왕 고릴라’...

여튼 당 영화는 매우 교훈적이라는 점 하나 만큼은 확실하였다.

우선 당 영화는 건강의 척도 중 하나인 악력이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공룡 세 마리와 사생결단의 결투를 벌이며 천길 낭떠리지를 동반 추락하는 와중에서마저도, 한 손으로는 나무 뿌리 넝쿨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인을 결코 놓치지 않던 킹콩의 모습은 우리에게 강력함 만이 능사가 아니요, 미묘하고도 섬세한 힘조절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일깨운다.

만일 킹콩이 여인을 잡은 손과 넝쿨을 쥔 손을 한 순간이라도 혼동하여 반대로 힘을 주었더라면, 비극적 결말의 주인공은 킹콩이 아닌 여인이 되었을 터, 섬세한 악력 조절 능력이야말로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낸 궁극적 열쇠였던 것이다.

더불어 <킹콩>은 지나친 식탐은 결국 큰 화를 부른다는 매우 전통적인 교훈 또한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여기에서 앞서 언급했던 킹콩과 공룡 삼형제와 결투의 원인을 돌이켜 보자. 그렇다. 이들의 싸움은 제1번 공룡이 자신을 피해 스리슬금 도주하던 금발미녀 ‘앤’을 발견, 추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헌데, 이 1번 공룡은 당시 이미 한 입 가득 식량용 공룡을 물고 있었던 바, 그 큰 식량을 내팽개친 채 거의 자두 한 알 정도 크기에 불과한 크기의 식량을 굳이 먹겠다고 덤벼들던 그 강력한 식탐의 세계야말로 킹콩의 분노를 부른, 그리하여 결국 공룡 삼형제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만 주범이었던 것이다.

마치 이승복 어린이마냥 입이 찢어지는 죽음을 당한 3번 공룡의 혹독한 최후는, 이슬맞은 대나무만 먹고사는 소식의 황제 킹콩이 전세계 식탐인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보다도 훨씬 더 결정적인 교훈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나친 집착은 항시 화를 부른다는 교훈이다.

이건 물론, 영화 제작자 ‘칼 덴햄’이 신기한 동물을 뉴욕으로 데리고 와, 흥행 대박을 노렸던 걸 말하는 것은 아님이다.

칼 덴햄의 진정한 문제는, 그가 킹콩에만 집착했다는 점에 있다. 왜 꼭 고릴라이어야만 했는가!

앞서 얘기했듯 킹콩이 살던 ‘해골섬’에는 수많은 종류의 공룡과, 특대 사이즈의 각종 희귀 벌레들이 다수 서식하고 있었던 바, 칼 덴햄은 17명의 인명 피해를 입어가면서까지 굳이 킹콩을 포획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도대체 없었다.

점프력이 좋아 잡기도 힘들고, 인간을 닮아서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도 많은 킹콩을 굳이 데려가는 것보다는, 사방에 지천으로 널린 공룡 중 한마리를 잡아가거나, 그 사체라도 가져가서 안전하고도 수익성 높은 흥행을 노리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었겠는가.

집착은 언제나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굳이 줄기세포 파문 같은 것이 아니어도, 이런 시시껍쩍한 상업영화 한 편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씨네 21 535호 (05년 1월 첫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