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 아가형 기생충을 함유한 중국산 김치의 제조원이, 당황스럽게도 중국에 공장을 차린 한국 사람들이었더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식품 원산지 표시뿐만 아니라 식품 생산자의 성분표시 또한 중요하단 사실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어디 김치뿐이랴. 많은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화 생산물에도, 그와 같은 성분표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레전드 오브 조로>의 흥행 저조와 함께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뭔 소리냐. 함 보자.

그 기본 사양만 살펴보더라도, <레전드 오브 조로>는 재미가 없을 수가 없는 영화였다.

일단 반데라스 섹시하고, 제타 존스 아리땁다. 가만히 있어도 멋진 얘들이, 심지어는 무공과 예절 또한 겸비했음과 동시에, 각자 최소한 2개 국어 정도는 유려히 구사해준다.

물론 유머 또한 충분히 세련됐다. 심지어는 Zorro가 타고 다니는 말까지도 이 유머대열에 합세하고 있으니, 두말할 나위 없겠다. 게다가 얘들은 각자의 본분인 마상검술철도질주육탄격투 액션 또한 다종다양한 버전으로 질릴 때까지 보여준다.

게다가 1편의 성공을 안이하게 복습함 또한 없이, 'Zorro 커플‘이 아닌 ’Zorro 가족'이라는 나름대로 참신한 설정도 도입하고 있다. 물론 이는 <트루 라이즈>부터 <인크레더블>까지 심심치 않게 보아온 것들이나, 그래도 Zorro 부부를 이혼부터 시켜놓고 들어가는 등의 설정은 나름대로 과감했다 할 것이다 등등등...

<레전드 오브 조로>가 재미있어 마땅한 이유들은 도처에 산재했던 것이다.

근데, 다들 예상하셨듯, 결정적인 문제 하나가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Zorro가 검을 뽑는 이유다.

Zorro 가족 전원을 위시한, 각급 착한편들이 일제히 목숨 내놓고 달려들어 그리도 박터지게 싸운 건, 다름이 아니오라 ① 압제로 인해 도탄에 빠진 멕시코인들을 자유 아메리카의 품 안에 안기게 함과 동시에 ②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위대한 아메리카국을 수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거의 유에쓰에이 국정 홍보처 제공 공익 광고를 방불케하는 이 스토리를, 미 문화원 측의 기금 지원 한 푼 없는 내 돈 7000원을 통으로 다 내고 봐야만하는 엄혹한 현실... 그 앞에서, 그 뉘라 단말마의 신음 ‘Zotto....’ 한 마디 흘리지 않을 수 있을쏜가.

해서, 이런 영화는 웬만하면 해외수출하지 말고 그냥 유에쓰에이 내수용으로 돌려, 자기들끼리 오손도손 즐겁게 봤으면 좋았을껄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정 해외수출을 해야 했다면, ‘당 영화는 강력한 유에쓰에이 만세 성분을 함유하고 있습니다’등의 성분 표시부터 확실히 하던가 말이다.

기생충엔 구충제라도 있다지만, 이딴 영화를 보고 남은 Zott같은 기분엔 도대체 약도 없다는 ‘Zotto의 전설’...

오랜 경험을 통해 이 전설을 체득해온 한국 관객들에게 유에쓰에이 무비가 심어온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처방은 오직 하나다.

'정직하고 확실한 성분표시'.

씨네 21 528호 (05년 11월 둘째주)